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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서울 동학(東學)에서 공부하던 중 인조가 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는 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과거를 보지 못하게 된 허목은 자유롭게 산천을 주유하면서 영암에도 자주 왔던 것으로 보인다. 외할아버지 임제의 동생 임환(林懽, 1561-1608)이 임구령의 손자사위였기 때문에 당시 구림 사족들은 임환의 조카를 기꺼이 반겼을 테고, 무엇보다도 허목의 외사촌인 임제의 아들 탄(坦, 1571-1645)이 구림 동장을 지낸 현건(玄健, 1572-1656)의 사위였기 때문에 다들 친지처럼 환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건은 이순신과 간찰을 주고받았던 인물로, 그 간찰들은 그의 당숙 현덕승의 간찰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허목은 구림을 비롯한 영암을 마실 다니듯이 편안하게 오갔을 것으로 보이며, 1640년에는 월출산을 유람한 후에는 월악기(月嶽記)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다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예학을 수립하고 그만의 독특한 전서체를 창안한 인물로 널리 알려지면서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56세인 1651년에 관직에 진출했다.
한데 같은 해 그의 정적(政敵)인 김수항(金壽恒, 1629-1689)도 23세의 나이에 장원 급제하여 역시 관직에 나섰고, 매번 관직을 사양하던 허목과는 달리 승진을 거듭하여 1672년 11월 44세에 좌의정에 오른다. 하지만 제2차 예송논쟁에서 허목에게 밀려 1675년 7월 28일 47세의 나이로 영암으로 유배된 그는 3년 여의 유배 생활 중 연주현씨, 함양박씨, 창녕조씨 등 구림의 사족들은 물론 남평문씨, 거창신씨, 영보최씨 등 영암의 사족들, 나아가 도갑사 스님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그 중에서도 그가 자주 출입한 집 중의 하나가 바로 현건의 손자인 현징(玄徵, 1629-1709)의 집이었다. 예로부터 과거 급제자들은 자신의 시험관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1660년 증광시에서 현징이 사마시에 급제할 때의 시험관이 바로 김수항이었다. 때문에 현징은 같은 연배이면서도 김수항을 스승으로 깎듯이 대했던 듯하고, 그래서인지 김수항은 떠나면서 죽림정기를 남겼다. 1675년 아버지를 모시고 영암에 내려왔던 25살의 청년 김창협은 허목이 35년 전에 올랐던 구정봉을 오른 후 ‘등월출산구정봉기(登月出山九井峯記’를 기록했으며, 현징의 아들 현약호(玄若昊, 1659~1709)의 스승이 되면서 두 집안의 세교(世交)는 대를 이어 지속되었다.
35년을 사이에 두고 현씨 집안에서 발길이 엇갈린 허목과 김수항. 과거 시험을 보지 말라는 정거령(停擧令)이 풀렸음에도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세상을 떠돌았던 허목과 진도에서 사약을 마시기 직전에야 자식들에게 과거시험을 보지 말라는 당부했던 김수항. 허목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김수항이 연상되고, 김수항의 수심 어른 눈길을 떠올리면 그의 조부인 김상헌이 생각난다. 그리고 김상헌에 생각이 미치면 저 월출산 깊은 계곡에 1653년 건립한 도선국사비가 떠오르고, 영암의 어느 선비가 사다리를 타고 몰래 올라가 비석 맨 위에 새겨진 김상헌의 이름을 깎아냈던 그 씁쓸한 사건이 되살아난다.
경상도 창원의 화원서원 등에 배향되어 있는 허목과 영암의 녹동서원 등에 배향되어 있는 김수항 부자, 사서삼경을 바탕으로 주자(朱子) 이전의 고대 예법을 고집했던 허목과 주자의 예학에 기반을 두고 송시열과 함께 허목 등을 줄기차게 내몰았던 김수항, 같은 공자의 제자이면서 왜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그렇듯 극렬하게 대립했을까. 남도의 명산인 월출산 계곡을 그토록 거닐었으면서도, 선승인 도선국사의 정기를 받았으면서도 이곳이야말로 무릉도원이라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이런 비극을 예감했는지 허목의 사조(師祖)인 퇴계 이황은 1551년 퇴계에 머물면서 절친인 경상도 관찰사 계임(季任) 조사수(趙士秀)가 쓴 시를 차운한 ‘次季任密陽嶺南樓和朴昌世詩二十二韻(계임 조사수가 밀양 영남루에서 화답한 박창세의 시 22운을 차운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22연이나 되는 배율시 중에서 마지막 두 연이 절창(絶唱)이어서 그대로 번역한다.
安得樓居同吐納 어떻게 하면 높은 누각에서 친구와 함께 양생하면서
仍看羽化脫喧啾 떠들썩한 세상을 벗어나 우화등선할까?
浮游汗漫出六合 명리를 벗어나 유유자적 떠돌다가
臥閱蓬萊清淺流 봉래산 속에 들어가 누우니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6.02.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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