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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피난민 중심의 술집이 확산되어 즐기는 술이 아니라 공동체 공간에서 전쟁의 상흔을 서로 쓰다듬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위안의 수단으로 마시는 음주문화가 형성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된 60~70년대에는 도시 노동자와 직장인을 중심으로 고된 노동과 팍팍한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한잔하는 문화가 보편화 되어 술자리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동료들과 결속을 다지는 소통과 화합의 자리였고 술집도 길거리에서 저렴하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포장마차가 성행하였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술집은 민주화 담론이 벌어지는 비공식 민주 토론의 장소였다. 대학가, 노동 현장 인근의 술집이 호황을 누렸고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에서 혹독한 군사정권의 벽 앞에 술잔을 털어 넣고 울분을 삼키며 시대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자리였다.
90년대에 들어서는 민주화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소득향상과 함께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과거처럼 술을 스트레스 해소나 공동체 연대를 다지는 "다 같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마실지 고르는 술"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마른안주에 생맥주를 마시는 호프집이 성황을 이루었고 술집도 인테리어와 조명을 화려하게 갖춘 분위기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고 술을 마시면서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스텐드바가 유행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술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술의 종류도 소주 맥주 막걸리에서 와인, 위스키, 칵테일로 다양화되었고 술집도 와인바, 칵테일바가 증가하는 등 "양보다 질" "취함보다 취향"을 중시하는 감성주점이 등장했다.
우리나라 술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밀주 단속이다. 조선시대에는 가양주라고 해서 가정에서 자유롭게 청주, 막걸리를 빚을 수 있었는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조선총독부는 1916년 주세령을 공포하여 집에서 술을 빚으려면 허가를 받도록 했고 허가받지 않은 술은 밀주로 단속을 했다. 주세령을 공포한 표면적 이유는 위생적이고 근대적인 주류산업 보호 육성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주세를 거두어들여 조선총독부 재정을 확보하고 우리나라 전통 가양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밀주 단속은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안정되고 주류산업이 확대되면서 밀주 규모는 점차 감소하여 요즘은 밀주 단속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된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정감 있는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을 완화해주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술은 축하와 위로 화해의 상징으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그렇다고 술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나친 과음은 건강을 해치고 알코올 중독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또한 음주로 인한 사고, 폭력, 가정불화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절제하는 음주문화가 요구된다. 술 마시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셔야 하고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대화와 공감을 하는 관계 중심의 음주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술은 선도 악도 아니다. 술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과거의 술 문화가 공동체를 중시하고 절제를 요구했다면 오늘날의 술 문화는 존중과 선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잔을 비우는 속도보다 함께 하는 사람 간의 품격을 높이는 술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2026.05.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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