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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射亭(열무정) 창건 및 사포계에 관한 문헌고찰
[507호] 2018년 03월 09일 (금)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황용주
영암군교육공동체협의회장
열무정 사두
열무정 사포계 공사원
前 영암교육지원청 교육미래위원장
前 영암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영암 열무정 사포계 황용주 공사원은 최근 (사)향토문화개발협의회가 펴낸 <향토문화 제36집>에 '영암 射亭(열무정) 창건 및 사포계에 관한 문헌고찰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60호 사포계문서 국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射亭 창건 및 사포계에 관한 문헌고찰 ▲射亭 창건의 시대적 배경 ▲사포계지에 기록된 鄕射禮 ▲자료 : 鄕射禮와 饗射禮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 황용주 공사원의 논문은 영암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기도 한 열무정에 관한 첫 체계적인 연구인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내용을 수회에 걸쳐 전재한다. <편집자註>

“사포계 창설은 鄕射 의미를 본받아 활쏘기를 권장하여 때때로 익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나간 두 번의 정사년(1797, 1857)에 관가(官家)에서 향인(鄕人)들을 격려하고, 음우(陰雨)를 염려한 나머지 출연금을 내어 주어 사포계를 창설한 것은 향사(鄕射)의 의미를 본받아 활쏘기를 권장하여 때때로 익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포계를 지켜온 것은 곧 향사(鄕射)를 위한 것이고, 또 사정을 보수한 것도 곧 향사(鄕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열무정 사포계지 쪽87)
사포계는 사정에 속한 모임으로, 원하건대 영구히 규칙을 지키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예능을 익혀나가면 읍(揖)하고 사양(辭讓)하는 풍속을 오늘날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차를 옛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열무정 사포계지 쪽86)

5. 현존하는 관습 향사례, 그리고 향약

㈎ 향사례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이 활쏘기를 즐기어 궁술대회를 장려하였다. 해마다 봄·가을이 되면 한량(閑良)들이 어느 하루를 택하여 편(便)을 갈라서, 혹은 두 사정에서 한량으로만 편을 짜서 편사(便射)하였다.
시합은 80간 거리의 사정(射程)에 높이 12자, 너비 8자의 목판으로 된 과녁을 만들어 세우고 원선(圓線)으로 중심을 표시하여 사정에서 사수들이 번갈아 활을 쏘는데 이때에 기생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활을 쏘는 한량들 뒤에 나란히 줄을 지어서서 소리를 하여 사수들을 격려하였다. 사수가 쏜 화살 5개가 과녁에 바로 적중된 것을 신호수(信號手)가 신호로 알리면 기생들은 북을 울리고〈지화자...〉라는 소리를 하면서 한바탕 춤을 추었다. (동아백과사전)
1506년 9월 등극한 중종은 1519년 현량과를 도입, 종래의 과거 제도가 본질적인 모순으로 인해 학업을 모두 시험 준비에만 한정하도록 하는 폐단을 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개인의 인품과 덕행을 판단할 수 없게 한다면서 이를 폐지하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을 천거하는 제도를 통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천거 제도가 바로 현량과였다. 현량과는 중앙에서는 성균관을 비롯한 삼사와 육조에 천거권을 주고, 지방에서는 유향소에서 천거하여 수령과 관찰사를 거쳐 예조에 전보하도록 했다.
천거 근거로는 성품, 기국, 재능, 학식, 행실과 행적, 지조, 생활 태도와 현실 대응 의식 등 일곱 가지 항목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천거된 사람은 전정에 모여 왕이 참석한 자리에서 시험을 치른 뒤에 선발되었다. 그래서 후보자 120명 가운데 현량과를 통해 급제한 사람은 28명인데, 그들의 천거 사항을 종합해 보면 학식과 행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들 28명의 연고지를 살펴보면 경상도 5명, 강원도 1명, 그외 1명 등 7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1명은 모두 기호지방 출신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발췌)

㈏향약(鄕約)

조선시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 또는 그 규약에 근거한 조직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뜬 것으로, 조선 중종 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의 주장으로 추진되어 영·정조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실시하였다. 착한 것은 권하고 악한 것은 혼을 내며 서로서로 도움을 위해 마련했던 향촌의 자치 규약은 조선시대인 1517년부터 시행됐다.
그 기본 내용을 보면 첫째 훌륭한 일은 서로 권장한다(德業相勸), 둘째 잘못은 서로 살펴 고쳐준다(過失相規), 셋째 서로 사귐에 있어 예의를 지킨다(禮俗相交), 넷째 환난을 당하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등 네 가지 조목으로 이루어졌다.
향약이 전국적으로 실시된 것은 향약의 임원이 지방자치조직의 요직을 겸임하게 된 것도 요인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탐욕이 많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공무원들은 향약의 기능이 활발해 질수록 자신의 행동영역이 축소됐기 때문에 향약의 성장을 억제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것은 조선후기에 향약의 쇠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조선시대 관직 좌수(座首)

고을의 사족으로 나이 많고 덕망이 있는 사람을 선출하도록 했다. 정원은 읍격에 관계없이 1읍에 1명이 원칙이었던 것 같다. 위상과 선출방식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16세기에는 고을의 사족명부인 향안(鄕案)에 등록된 사람들이 모인 향회에서 선출했는데, 반드시 경재소 당상의 승인을 받고, 이임식·취임식도 경재소에서 임원을 파견하여 직접 집행했기 때문에 수령과 유향소의 대립이 심각했다.
1603년(선조 36) 경재소 혁파 이후 좌수의 선출에서 수령의 영향력이 커져 좌수의 역할도 향권을 대표하기보다는 수령의 행정보좌역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향리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 결과 영조 때부터의 관찬읍지에서는 향소의 임원을 관직 조항에 넣어 수령의 속관으로도 취급했다. 그러나 18세기까지는 그 역할이 중시되어 안정복(安鼎福)은 <임관정요(臨官政要)〉에서 좌수는 반드시 올바른 사람을 얻을 것이며, 다만 향소를 통해 고을을 다스릴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안동지역은 전임 좌수가 추천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후기로 갈수록 재선출하거나 중도에 사임하는 경우가 늘고 임기도 1년 미만인 자가 절반 가까이 되었다. 좌수는 대개 고을에 기반이 있는 가문에서 나오는 것이 상례였는데 좌수의 명망이 특별히 높았던 이 지역에서는 전직 관료도 상당수를 차지하며 전직 정승출신도 있다고 알려졌다.(현존 기록상에는 판서가 최고임)
지역에 따라서는 새로 성장, 신분상승한 사람들이 좌수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좌수에게 별감을 추천하거나 향회와 의논하여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좌수와 동성(同姓)인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향의 공론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군역자차정, 조세, 환곡, 요역부과 등 재정 업무로부터 풍헌임명, 향중의 잡송, 분쟁해결, 풍기유지 등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계속 위상이 퇴조하여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혁 때는 향장(鄕長)으로 바뀌었다.→유향소 (사포계지 쪽 88)

Ⅳ. 자료 : 향사례(鄕射禮)와 향사례(饗射禮)에 대하여

㉮세시풍속분야 : 의례  ㉯계절 : 봄(음력3월) ㉰풍속 : 향음주례(鄕飮酒禮)
㉱소개: 예(禮)와 악(樂)의 확립을 통해 성리학적인 향촌교화를 목적으로 시행
          한 의례(한국세시풍속사전)

1. 정의(定意)

예(禮)와 악(樂)의 확립을 통해 성리학적인 향촌 교화를 목적으로 시행한 의례. 중국 주(周)에서 향대부(鄕大夫)가 3년마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때, 그 선택을 위해 활을 쏘던 의식에서 유래하였다.

2. 유래(由來)

<주례(周禮)> 사도교관직조(司徒敎官職條)에는 지방 단위를 향(鄕), 주(州), 당(黨), 족(族), 여(閭), 비(比)로 나누고, 그 장(長)을 각각 향대부, 주장(州長), 당정(黨正), 족수(族帥), 여서(閭胥), 비장(比長)으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향사례(鄕射禮)는 주에서 행하는 의례로 향대부가 정월에 사도(司徒)로부터 교수하고, 그것을 주장에게 전수하면 주장은 정월 중의 길일을 택해 향사례를 행하였다. 향사례의 ‘사(射)’는 ‘그 뜻을 바르게 한다(定其志)’라는 의미이다.
의례(儀禮) 향사례조(鄕射禮條)에는 ‘주장이 춘추(春秋) 두 계절에 예법에 따라 백성을 모아 주서(州序, 州의 학교)에서 활쏘기를 익히는 것(習射)’이라고 기록하여 향사례의 또 다른 의미를 알려준다.
고려 말 성리학이 전래됨에 따라 향음주례(鄕飮酒禮)와 더불어 향사례가 전래되었다. 향사례에 대한 기록은 세종 때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종 15년(1433) 왕은 술의 해로움을 경고하며 내린 교지에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술잔을 주고받는 것으로 절도를 삼으며, 활을 쏘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는 읍하고 사양하는 것으로 예를 삼는다. 향사례는 친목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양로례(養老禮)는 나이와 덕 있는 사람을 숭상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중앙에서 대사례(大射禮)의 시행을 통해서 예와 악을 확립하고자 한 반면, 지방에서는 향사례를 통해서 예와 악의 확립 과정을 거쳐서 지방민을 통치하고 교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식을 토대로 시행되는 향사례에 대한 의논은 성종(成宗) 때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검토관(檢討官) 정성근(鄭誠謹)은 조정에서 하는 양로례와 대사례에 병행해서 지방에서도 향사례와 향음주례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재된 대로 시행해서 백성을 교화하고 선량한 풍속을 성취할 것을 주장하였다.
성종은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서 맹동(孟冬)에는 개성부와 주, 부, 군, 현에서 길일을 택하여 향음주례를 행하고,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례를 시행할 것을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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