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사는 길
죽어서도 사는 길
  • 영암군민신문
  • 승인 2018.10.05 13:37
  • 호수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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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책 ‘밤이 선생이다’와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책꽂이에서 꺼내 훑어보았다. 밑줄 친 부분, “한 사람이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학적 재능이라는 것은 둔중한 것에서 날카로운 것을 발견하고 단단한 것에서 무른 것을 발견하며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질서를 바꾸는 힘을 말한다.”는 대목을 다시 읽어 보았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저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때가 오면 만나 뵐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부음을 먼저 듣게 되었다.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그 이름에 걸 맞는 글을 쓰고 있는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 그런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가. 나는 작가가 될 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또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가.
이아침, 나는 우리로 하여금 초지일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게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어떤 이가 쓴 한 줄의 글, 누구로부터 들었던 한 마디 말, 특별한 사건이나 풍경에서 얻은 영감. 이런 게 한 사람의 평생을 결정짓게 한다.
황현산 선생처럼 글을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친 분도 계시지만, 최근 유명을 달리한 또 한 분, 노회찬 의원이 떠오른다.
노회찬, 그의 죽음으로 한동안 먹먹한 날을 보냈다. 그의 장례행렬 뒤로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쓴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벗"이라는 만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분향소에 길게 줄을 선 조문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죽어서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면 그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길일까. 삶과 죽음은 하나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 젊을 때는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길은 순서가 없다.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을 모른 채 살아간다. 마지막 순간이 어떻게 올까. 누구나 갈 수 밖에 없는 길. 아무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그 길. 사람들은 궁금하고 두렵고 겁나고 무서운 그 순간을 떠올리기조차 싫어한다. 시간은 한 치의 착오도 없다. 피하고 싶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그 순간은 오고야 만다.
황현산 선생은 고려대학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생의 마지막이 겁나고 두려운 당신에게 위로가 될른지 모르겠다. <벼랑 끝으로 오라>는 시다.
“그가 말했다 / 벼랑 끝으로 오라 / 그들이 대답했다 / 우린 두렵습니다 / 그가 다시 말했다 / 벼랑 끝으로 오라 / 그들이 왔다 /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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