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이하여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이하여
  • 영암군민신문
  • 승인 2019.04.12 15:09
  • 호수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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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br>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김태윤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출근길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니 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4월, 1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일제로부터 국권의 회복을 위한,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미완성된 최초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설립이다.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창설하였고,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의미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였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다음날 4월 11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로 3권 분립에 의한 민주 공화제 정부인 상해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건립 초기부터 의원내각제를 기반에 둔 정부 형태로 조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국내외 동포를 관할하기 위해 연락기관인 교통국을 두고 지방행정제도인 연통제를 실시하였으며 이곳에서는 군자금 모집, 국내 정보수집, 무기 수송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사료편찬부를 설치하여 <한일관계사료>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고, <독립신문>을 비롯한 여러 기관지를 만들어 대내적으로는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침략사실과 한국역사의 우수성을 세계 각지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임시정부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무장단체들의 여러 전투와, 이봉창 일왕 폭탄 의거, 윤봉길의 홍커우 공원 투탄 의거를 통해 일제에게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초기 상해시대(1919~1932), 거세진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을 떠돌았던 이동시대(1932-1940) 그리고 충칭시대(1940~1945)에 광복군을 창설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군의 OSS부대와 함께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던 중,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하게 된다.
비록 대한민국의 광복은 미국, 소련 등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졌지만, 임시정부가 보여준 국가적, 정부적 역량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광복은 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임시정부 조직에서 드러나는 국가의 형태를 통해 세계열강들에 우리민족의 주권을 확인시킬 수 있었고, 이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을 앞당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를 세우고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킨 선조들이 있었기에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음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지역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함평군 신광면 상해임시정부 복원 청사 앞 광장에서 오후 2시, 약 600여명이 참석하여 임시헌장 선포문을 낭독하는 등 기념식이 있었다.
또한, 기념식 다음날인 12일 광복회광주전남연합지부에서 주관하는 학술회의가 무안군 삼향읍에서 개최되며, 이어 12일과 13일에 각 한 차례씩 남도소리 울림터 공연장에서 호남의병의 독립운동을 그린 창극 <개벽>을 공연한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당시 우리 선조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직접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 뜻 깊은 기념일이 되지 않을까. 물론 모두가 그 행사에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2019년 4월 11일 마음만은 이 땅을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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