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면 내동리 쌍무덤 문화재 정밀발굴조사결과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 문화재 정밀발굴조사결과
  • 영암군민신문
  • 승인 2019.07.05 13:48
  • 호수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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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석곽서 출토된 금동관편은 나주 신촌리 9호분 금동관과 동일 유물 판단

주구의 동물형태 형상식륜은 수장층의 일본과 교류관계 확인할 수 있는 유물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1호분) 문화재 정밀발굴조사 자문회의가 지난 7월 2일 오후 시종면 내동리 발굴현장에서 열렸다.
이날 자문회의에는 전동평 군수와 임승경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은화수 국립나주박물관장, 이정호 동신대 교수, 김낙중 전북대 교수 등 자문위원 등 학자, 조사기관 관계자,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자문회의는 조사기관인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이범기 소장의 발굴조사 성과발표와 조사현장 관람, 질의응답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를 싣는다. <편집자註>

■ 입지 및 유적분포

쌍무덤이 위치한 내동리 일대는 많은 고분들이 밀집 분포되어 있고, 비교적 일찍부터 알려지거나 조사된 고분들이 많다. 고분들은 내동리 면소재지 뒤편의 발달된 구릉을 따라 분포되어 있으며, 원내동 뒤편에 솟아있는 성틀봉에서 뻗어 내린 구릉의 정상부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성틀봉의 정상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고분도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동북향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시종초등학교 바로 뒤쪽에는 동산고분, 구릉의 가장 끝에는  쌍무덤이 자리한다. 고분이 위치한 곳을 ‘쌍무덤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형적으로 매화락지(梅花落地)의 형국이어서 그렇게도 부르고 있다.

고분은 자연·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분포한다. 영암지역 고분 현황을 보면 기존 보고된 고분 수량이 49건 187기로, 이 중 분구가 존재하는 고분은 34건 104기이며, 고분의 분포는 크게 2지점으로 구분된다.
삼포천을 경계로 나주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저평한 구릉과 충적평야가 이어지는 북부지역과 월출산을 경계로 한 남부지역으로 구분된다. 북부지역은 나주시 일대가 대부분 원형이나 방형인 것과 달리 제형의 분형을 가진 고분의 분포가 많다. 특히 시종면의 만수리, 내동리, 옥야리 일대는 반남면과 인접한 지역으로 다양한 분형과 대형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남부지역은 이런 대형 고분보다는 금계리, 선황리 유적과 같이 초기 옹관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영암지역 고분의 입지는 특별히 구분되는 경향은 보이지 않으며, 주로 영산강 본류와 지류 주변에 형성된 넓은 충적지에 고루 분포하는 양상이다.
쌍무덤 역시 입지상으로 영암지역에서 고분이 밀집 분포하는 시종면에 위치하고 있다. 무려 28개소가 분포해 있으며, 특히 쌍무덤 주변 반경 1㎞ 이내에는 7개소의 고분이 분포해 있다.

■ 조사내용 - 고분현황

고분군은 현재 3기이나, 1986년 목포대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 당시에는 4기로 대형분 2기, 중형분 1기, 나머지 1기는 파괴되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1~3호는 야산에 위치하며, 4호분은 민가와 연접되어 있다. 고분군은 1986년부터 1990년 사이에 정비·복원됐다.
1호분은 영암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고분으로 정비 전 평면 형태는 찌그러진 제형(사다리꼴) 내지는 장타원형이며, 장축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지형 상 아래쪽인 북쪽에 약간 낮은 평탄부가 형성되어 있다. 분정을 기준으로 북쪽은 급경사, 남쪽은 완경사를 이룬다.

1986년 목포대 박물관이 작성한 최초 실측도에 의하면 북쪽 전면에서 등고선이 직선에 가까운데 비해 남쪽은 호형으로 돌아가고 있어 전형적인 제형고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부에는 북서, 남서 등 2곳에 예비군 참호가 구축되었고, 참호 사이에 움푹 파인 도굴 갱이 있었는데 주변으로 상당량의 옹관 편들이 확인된 바 있다. 북쪽의 낮은 평탄부 중심에는 민묘 1기가 있으며, 제2호 분과의 사이에 오솔길이 있었다 한다. 또 일제 강점기에 부분적으로 도굴되었다고도 하며 그 후에도 분구 위에서 많은 구슬들을 수습했다 한다.
2호분은 원형으로 보이지만 방형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1호분의 북동쪽에 연접되어 있는데, 분구 주위가 개간되면서 분형이 변형됐다. 정상부에는 예비군 참호가 조성됐고, 남동부에는 민묘 3기가 있었다.
3호분은 1호분과 동쪽에 연접되어 있는데, 분구는 남북으로 약간 긴 편이며, 분정 두 곳에 함몰부가 있다. 분구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나 방대형으로 추정된다. 봉분의 북동과 동편 둘레에는 각각 민묘가 조성되어 있었다.

■ 조사내용 - 분구(墳丘)

분구(무덤 위에 구상(丘狀) 또는 대상(臺狀)으로 축조한 塚)의 평면 형태는 방형 내지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장축방향은 북동-남서향이고, 규모는 길이 53m, 너비 33.6m, 높이 4~7m이다. 전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시굴조사 당시 토층 및 트렌치 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분구 축조공정을 추정할 수 있었다.
매장주체시설은 분구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확인되며, 해발고도 15.8m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재의 양상을 파악한 뒤 분구의 기준 단면을 1m 정도 남겨두고 10×10m의 그리드를 설정해 정비복원으로 복토된 층을 제거했다. 복토층은 2m 정도 성토됐으며, 이를 제거하자 복원 이전의 분구가 확인됐다. 정비 복원하는 과정에서 굴삭기 등의 장비 흔적과 부분적으로 가축에 사용되었을 주사기, 병 등의 의료폐기물들을 함께 매몰해 분구의 매장주체부가 상당부분 훼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결과 추정 석실 1기, 석곽 3기, 옹관 1기가 확인됐고, 분구의 남쪽 사면에서 추가로 옹관 1기가 확인됐다.
1호 석실은 1호와 2호 석곽 하부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현재 1·2호 석곽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명확한 형태와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1호와 2호 석곽에서 부분적으로 확인되는 양상을 보았을 때 규모는 300×220㎝ 정도로 판단된다. 석실의 축조는 분구 정지층에서 분구 하부를 100㎝ 정도 높이로 조성한 뒤 그 위에 매장주체시설과 함께 봉분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축조했다. 석실의 축조는 회황갈색의 점토와 비교적 소형의 판석재를 이용해 축조한 것으로 파악되며, 대형의 판석재를 개석으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향후 2차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내부조사를 진행하면 정확한 축조방식이 확인될 것이다.
1호와 2호 석곽은 1호 석실의 개석 상면에 일정부분 정지하고 축조했다.
1호 석곽은 1호 석실의 개석 상면에 축조 당시 개석의 밀봉토로 사용된 점토층 상면에 적갈색사질토를 바닥에 정지한 뒤 축조했다. 장축방향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잔존 규모는 장벽 440㎝, 단벽 80㎝, 잔존 높이는 30~60㎝ 정도로 세장형이다.
벽석은 1단에서 8단 정도 남아 있다. 축조는 부정형 할석을 이용해 가로나 세로방향으로 장·단벽에 놓고 그 위로 회황갈색의 점토를 덧바른 뒤 다시 할석재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확인된다. 바닥면은 남벽 주변으로 확인되며, 모래를 약 5㎝ 정도 깔았으며, 중단부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1호 석실로 인해 바닥이 무너진 상태로 확인된다. 후대에 정비복원과정에서 후벽(폐쇄석)이 모두 유실돼 석곽의 명확한 구조는 어렵다.
출토유물은 남벽 바닥에서 숫돌 1점, 중단부에서 자라병, 광구소호, 발형토기, 철검, 북벽 주변에서 단경호, 완, 직구호, 발형토기가 확인됐다. 중단벽과 후벽 사이에서 다양한 구슬(곡옥, 다면옥, 구슬옥 등)과 함께 금제이식 1점이 출토됐고 묘실바닥의 장벽부근에서 관못이 부분적으로 확인됐다.
2호 석곽은 1호 석곽 좌측에 연접해 확인되고 있으며 1호 석곽과 비교적 나란한 방향으로 축조됐으며 규모는 1호 석곽보다 크다. 장축방향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잔존 규모는 장벽 520㎝, 단벽 90~100㎝, 잔존 높이는 30~70㎝ 정도이며 형태는 세장형이다.
남쪽 단벽은 1단 정도 남아 있으며 서쪽 장벽은 6단 정도 남아 있다. 축조 방식은 1호 석곽과 유사한 양상으로 축조되어 있다. 1호 석실의 개석을 바닥면으로 사용해 적갈색사질토로 정지한 뒤 부정형 할석을 이용해 가로나 세로방향으로 장·단벽에 놓고 그 위로 회황갈색의 점토를 덧바른 뒤 다시 할석재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확인된다. 석곽의 바닥은 정지면 위로 점토를 이용해 다짐처리 했다. 바닥면은 남벽 주변으로 확인되며, 중단부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1호 석실의 영향으로 무너진 상태로 확인된다.
출토유물은 남쪽 바닥면에서 유공광구소호, 배, 직구호를 비롯해 다량의 구슬(곡옥, 채색옥, 금박유리옥)과 금제이식 4점, 영락1점이 출토됐다. 바닥 중단부에서 대도 2점이 나란하게 놓였으며 대도 날 부분이 남쪽 전벽인 두향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대도 주변과 사이에 소형 구슬들이 다량으로 확인됐다. 2호 석곽의 좌측 장벽 일부가 교란으로 인해 훼손되었는데, 이 부분에서 다량의 관못과 금동관 대륜부 상부장식에 사용된 유리구슬과 영락, 금동관조각 편들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장식용 유리구슬은 구슬의 2/3 정도 하단부에 금동으로 도금해 대륜부에 해당되는 상부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흔적이 확인된다. 이러한 용도는 나주 신촌리 9호분 금동관에 장식된 유리구슬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금동관편 중에 축조(蹴彫)기법으로 장식된 편도 확인된다.
3호 석곽은 1호 석곽의 우측에 나란하게 축조되었다. 북서쪽 벽석이 후대 정비복원과정에서 모두 훼손되어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잔존규모는 장벽이 170㎝, 단벽이 120㎝ 정도로 확인되고 있으며, 비교적 1호와 2호 석곽의 할석재 보다는 정연한 방형 내지 장방형의 석재를 사용했다. 장축 방향은 남동-북서 방향이며, 3단만 남아 있다. 유물은 바닥에서 개편 1점과 퇴적토에서 외면 격자타날과 내면 동심원 박자흔이 확인되는 쓰에끼 계통의 호형토기편이 수습됐다.
옹관은 총 2기가 확인됐다. 1기는 매장주체부인 2호 석곽에 인접해 확인되었고, 나머지 1기는 매장주체부에서 동쪽방향으로 약 6m정도 떨어진 분구의 동쪽사면부에서 확인되었다. 매장주체부에서 확인된 1호 옹관은 추후 2차 발굴조사를 통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동쪽 사면부에서 출토된 2호 옹관은 구지표 바로 위에 형성된 성토층을 굴광해 묘광을 마련했는데 옹관 동체부 상면은 모두 훼손되고 하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합구식 옹관으로 대옹이 서쪽에 소옹이 동쪽에 위치해 분구 사면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는 남북 방향이다. 전체 길이는 192㎝이며, 대옹이 117㎝, 소옹이 114㎝으로 합구부에 39㎝ 정도 소옹을 삽입해 바닥면을 제외한 측면에서 상부까지 점토를 메워 밀폐시켰다. 대옹 주변으로 단경호 1점과 개가 한 세트를 이룬 상태에서 출토되었으며, 단경호 옆으로 대호 2점이 구연부가 파손돼 출토되었다. 옹관 내부에는 철촉과 다면옥, 소옥 등의 구슬이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 조사내용 - 주구
주구 조사는 기존 시굴조사에서 남쪽 동쪽 서쪽 트렌치의 봉분 하부 경사변환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주구의 형태, 범위 등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기존에 확인된 주구의 주변으로 퇴적토를 제토해 주구의 양상을 파악했다.
조사결과 봉분의 남쪽 주변으로 ‘L’자 형태의 윤곽선이 확인됐다. 정비복원 과정에서 현재 형태를 조성하기 위해 분구의 사면부와 주구가 맞닿는 부분에 굴삭기 버킷 투스(바가지 이빨) 흔적들이 상당부분 확인되며 주구의 일부에서도 훼손된 양상들이 확인되고 있다.
퇴적양상은 크게 3~4개 층으로 구분되며, 남쪽과 동쪽 주구의 하층은 점성이 강한 반면 상층으로 갈수록 사질성분이 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맨 아래에는 회갈색점토가 쌓여 있는데, 석립이 섞여 있고 질감이 거칠며 점성이 강하다. 주구가 사용될 당시 퇴적된 층으로 생각되며, 이 층에서 토기 편들이 소량 출토됐다. 그 위층의 갈색사질점토와 암갈색사질점토는 주구의 기능이 상실된 후 자연 퇴적된 층으로 유물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퇴적은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주구 상층은 일부 분구 성토층에서 흘러내려 퇴적된 양상도 일부 확인된다. 
남쪽 주구의 잔존 길이는 36m 내외이며, 너비 5~6m, 깊이 2.2m 정도 동쪽 주구의 너비는 4~5m, 깊이 1.2m로 지형에 따라 주구 폭이 좁아지는 양상이다.
출토유물은 남쪽 트렌치 주구에서는 주로 개배류와 연질토기가 주로 출토되는 반면에 동쪽 1트렌치와 남동쪽 트렌치에서는 형상식륜(形象埴輪)과 원통형토기편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현재 형상식륜은 사슴 또는 멧돼지(?) 형상으로 추정되며, 몸통 부분에 격자타날이 되어 있다. 원통형토기는 중앙 돌대를 중심으로 상·하로 원공이 투공되어 확인된다. 기존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원통형토기와는 상반되는데 형상식륜의 기대 부분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형상식륜은 내동리 쌍무덤과 함평 금산리 방대형고분에서 다양한 형상(말, 닭, 사람인면)이 출토됐다.

■ 조사성과
전남도와 영암군의 지원을 받아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영산강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라남도 기념물 제83호 영암 내동리 쌍무덤(1호분)에 대한 1차 발굴조사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18년도에 추진된 시굴조사는 분구 형태와 범위, 주구 및 매장주체 시설의 유무 등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진행했다. 이번에 실시된 정밀발굴조사에서는 1차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매장주체부 확인과 명확한 분구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조사를 병행했다. 
둘째, 매장주체부에 대한 조사결과 현재까지 추정 석실 1기, 석곽 3기, 옹관 1기와 사면부에서 옹관 1기 등 총 6기의 유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축조 양상은 중층으로 시기차가 거의 없이 축조되었으며, 축조 순서는 제일 먼저 1호 석실이 축조된 이후에 1호 석실 폐쇄 후 개석이 위치하는 편평한 부분을 일정부분 정지한 후에 1호 석곽 → 2호 석곽 → 3호 석곽 순으로 축조되었다.
셋째, 이번 발굴조사에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2호 석곽에서 확인된 금동관편이다. 확인된 금동관편은 외관에 해당되는 대륜부에 부착된 장식구슬, 영락 등의 존재로 살펴볼 때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확인된 금동관과 동일한 유물로 판단된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장식구슬의 존재는 현재까지 내동리 쌍무덤과 신촌리 9호분 출토품밖에 없다. 내동리 쌍무덤 2호 석곽에서 출토된 장식용 유리구슬은 구슬의 2/3 정도 하단부에 금동으로 도금해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의 대륜부 상부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흔적과 유사하다. 출토된 금동관편 중에 축조(蹴彫)기법으로 장식된 편도 확인된다. 이외에도 석곽과 옹관에서 다량의 구슬류(채색옥, 다면옥, 금박구슬, 곡옥 등)와 금제이식과 철검 등이 출토됐다. 토기류는 자라병, 광구소호, 발형토기, 단경호, 완, 직구호 등이 출토됐으며, 주구에서는 동물형태의 형상식륜과 고배, 개배 등이 확인된다. 주구에서 확인된 형상식륜의 확인은 이 지역 수장층에서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확인 할 수 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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