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발기인 모임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발기인 모임
  • 이승범 기자
  • 승인 2019.08.02 10:05
  • 호수 5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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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에 장만채 전 도교육감…9월 25일 군민회관서 창립총회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梁達泗) 현창사업회' 발기인 모임이 지난 7월 27일 열렸다.
'양달사 현창사업회'의 발기인은 모두 32명으로, 장만채 전 전남도교육감이 회장을 맡기로 했고, 김한남 문화원장과 신창석 재경영암군향우회장을 부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임원도 선출됐다. 또 창립총회는 오는 9월 25일 오전 10시 영암군민회관에서 갖기로 했다.
양달사 선생 현창사업은 1555년 을묘왜란 발생 당시 목숨을 걸고 왜구를 물리친 조선 최초의 의병장인 선생의 호국정신과 창의정신을 기리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로, 1555년 5월 25일 영암성대첩 464년만에 그 역사의 현장에서 현창사업이 시작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날 모임을 가진 양달사 현창사업회 발기인으로는 장만채 제16,17대 전남도교육감을 비롯해 김한남 영암문화원장, 조복전 영암군역사연구회 회장, 김호중 예비역 준장, 신창석 재경영암군향우회장, 윤명열 재광영암군향우회장, 김선형 재경도포면향우회장, 강규백 재광도포면향우회장, 문용현 재경영암읍향우회장, 임충열 재경시종면향우회장, 이건태 변호사, 이건화 의왕경찰서장, 박석태 전 mbc보도부국장, 김선만 화흥산업 상무이사, 양백근 경기화성 대표, 박창순 경기도의원, 최영심 영암군 바르게살기여성협의회장, 최화자 도포면 바르게살기여성협의회장, 이경자 도포면 생활개선회장, 한회숙 전 도포면 생활개선회장, 이영현 도포면장, 이재면 영암낭주조합장, 양수근 도포면문예체육진흥회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회장으로 선임된 장만채 전 전남도교육감은 "우리 영암이 낳은 의병장을 널리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고향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면서, "앞으로 우리 군민뿐만 아니라 전라도민, 나아가 우리 국민 모두가 양달사 의병장의 충효정신을 배우고, 학교 아이들에게도 교육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을묘왜란은 1555년 5월 11일 달량포(현재의 해남군 남창)로 70여척의 배를 끌고 6천여명의 왜구가 침입한 임진왜란 이전 최대의 왜란이다. 5월 13일에는 달량성 전투에서 절도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 등이 사망하고 이덕견 영암군수가 항복했다. 이에 왜구는 파죽지세로 치고올라와 강진과 장흥 등 10여개 성을 잇달아 함락하고 24일에는 덕진포로 숨어들어 영암성을 포위했다. 향교(옛 영암농협 자리)에 진을 치고 영암성 밖의 마을들을 피비린내나는 살육과 방화, 납치의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이때 도탄에 빠진 영암군민을 구한 이가 바로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다.
당시 해남현감을 하다가 어머니 상을 당해 고향 도포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양달사는 영암군수의 항복 소식을 듣고 형제들과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1555년 5월 25일, 영암성대첩에서 110여명의 왜구를 살육하고 도탄에 빠져 있던 전라도민을 구했다.
하지만 그의 공적은 조정에 보고되지 않아 정사(正史)에서 사라졌고, 모든 공적은 도 순찰사 이준경과 그의 형인 전주부윤 이윤경 등에게 돌아갔다. 1555년 12월 2일 명종실록에는 '공이 있는 달사는 어디로 갔는가(有功達泗歸何處)'라는 한탄이 서린 시구만 남아 있을 뿐이다. 1847년 조선 헌종 때 좌승지로 추증이 되었으나 여전히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양달사 의병장은 전라도 백성들을 살린 은인으로, 여지도서와 호남절의록, 조선말의 호남읍지 등에 그 공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샘을 파서 왜구에 포위된 성안 사람들을 구했다는 영암군청 앞 장독섬(將纛泉) 전설도 자손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출범하는 양달사 현창사업회는 지난 464년 동안 대한민국 역사의 뒤편에 묻혀 있던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의 충효와 절의정신을 영암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리고, 세미나 등을 통해 학계의 관심을 제고시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전라도민을 구한 호국인물이라는 점을 역사 속에 새롭게 정립해 나갈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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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 

조선은 1392년 건국 이래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으나, 그 위세는 조정에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1510년 삼포왜란의 경우도 관병에 의해 손쉽게 진압됐다. 그러나 1555년 을묘왜란은 전혀 상황이 달랐다. 10여개의 성이 함락되도록 관군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양달사 형제가 의병을 조직해 왜구를 물리쳤다. 일각에서는 1555년 5월 13일 을묘왜변 첫 전투인 달량성 전투에서 전사한 장흥의 백세례(白世禮)가 조선 최초의 의병장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으나, 백세례는 장흥부사 한온의 부장으로 참전해 전사한 관병이었다. 이에 반해 양달사는 해남현감 등을 역임했으나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위해 직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창의(倡義)했다는 점에서 그를 '조선 최초의 의병장'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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