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의병 연구의 금자탑 <영암의병사연구>
영암 의병 연구의 금자탑 <영암의병사연구>
  • 영암군민신문
  • 승인 2019.09.06 15:12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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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의병사를 최초로 정리한 <영암의병사연구> 발간에 따른 세미나가 열렸다. 공동집필 저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한 세미나에서 배포된 <영암의병사연구>는 그동안 소홀히 취급되어온 영암의 의병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함은 물론, 영암 의병들의 실체를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영암의병사연구>의 '임진 의병' 편을 저술한 영암역사연구회 조복전 회장은 을묘왜변 때 의병을 일으킨 양달사 의병장이 조선 최초의 의병임을 주장하며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에 적극 참여한 영암 의병들의 실체를 밝혔다.
'한말 의병' 편을 저술한 박해현 초당대 교수는 "영암은 '호남의병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암 의병의 실체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호남창의소'라는 의병부대를 영암 의병들이 결성했고, 이를 토대로 '호남의소'라는 남도 최대의 의병부대가 금정 국사봉을 중심으로 결성됐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사봉은 의병사령부로, 전남 중남부지역에서 전개된 의병전쟁의 심장부였음도 밝혀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 영암 의병들의 구체적인 부대 현황 및 전투상황을 일본군 진중일지를 이용해 복원하고, 국사봉을 중심으로 벌어진 의병 전쟁의 양상을 실증함으로써 '영암 의병'이 '호남 의병'의 핵심임을 주장했다.
<영암의병사연구>에는 확인된 영암 의병만 187명, 결성된 의병부대만 17개나 되는 등 다른 지역과 비교되지 않는 의병 활동을 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의병전쟁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大尾에 영암의병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연구 성과를 토대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영암 의병을 8인이나 찾아내는 성과도 거두었다고 한다.
<영암의병사연구>는 영암 의병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라는 점에서 영암 의병 연구에 금자탑을 쌓은 것으로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저자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영암 의병의 구체적인 활동상을 밝혀내는 작업은 미완의 과제다. 뿐만 아니라 세미나 종합토론에 나섰던 오수열 조선대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향토사 연구의 한계도 벗어야하는 점도 과제다. 연구물의 체계가 더욱 논리적이어야 하고, 영암 의병 활동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연구가 절실하다. 특히 <영암의병사연구> 곳곳에 보이는 저자들의 '영암에 대한 향토애적 감상'은 객관적 연구결과물에는 불필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암의병사연구>의 가치는 결코 훼손됨이 없다.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가 나온 만큼 더욱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영암 의병의 활동사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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