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영암의 어제 그리고 오늘
사진으로 본 영암의 어제 그리고 오늘
  • 이춘성 기자
  • 승인 2021.03.26 14:35
  • 호수 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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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대불산업단지

 

전남 서남권 공업지도 바꾼 영암의 국가산단

대불산단(1990년 공사 전 모습)
대불산단(1990년 공사 전 모습)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와 난전리 일대에 들어선 국가산업단지다. '대아산'과 '나불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 2013년에는 '영암테크노폴리스'로 명칭을 변경하려 한 적도 있다. 자주 ‘목포 대불산단’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그만큼 지리적으론 영암군에 자리해 있으면서도 개발이익이 영암 내부가 아닌 외부지향(?)의 공단이다. 실제로도 산단 근로자 대다수는 삼호보다는 목포나 무안에 거주한다. 영암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정작 배후주거단지는 학산면이나 군서면이 아닌 목포 하당으로 정해질 때부터 예고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대불산단(1992년 전경)
대불산단(1992년 전경)

80년대 중반 ‘서해안시대’를 구호로 내건 노태우 정부 때 서남권 개발 촉진을 통한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고 對 중국 전지기지 구축을 위해 수립한 서해안종합개발계획에 따라 1988년 7월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1989년 9월 착공된 1단계 공사가 1992년 5월 끝났고, 1990년 8월 시작한 2단계 공사는 1994년 5월 완료됐다.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착공식을(근접 취재가 허락되지 않아) 먼발치에서 취재했던 기자는 ‘낙후의 대명사’였던 목포와 영암 등 서남권의 공업지도를 바꿀 대역사였던 만큼 무척 감개무량했던 심정을 아직 기억한다.

대불산단 신산업철도 개통식(2004년 3월)
대불산단 신산업철도 개통식(2004년 3월)

그러나 명색이 국가산업단지로 개발되었으면서도 선뜻 입주하려는 기업이 없어 한동안 미분양사태에 시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서해안종합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이 뒤따르지 않아 기업체들에게 대불산단은 토지로 보면 ‘맹지’나 다름없었다. 목포신외항, 대불산단 인입철도, 무안국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등 서해안종합개발계획에 포함된 SOC 확충계획들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미분양 사태는 2001년 분양률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했다. 평당(3.3㎡) 분양가(22만9천원)를 30% 할인해 입주를 유도하기에 이르렀다.

대불공단(2004년 7월 21일)
대불공단(2004년 7월 21일)

이런 대불산단이 활성화되는 계기는 SOC 확충과 현대삼호중공업의 입주가 결정적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며 목포신외항과 인입철도, 무안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등이 속속 건설되었고, 분양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2년 산업자원부는 대불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현대삼호중공업(옛 한라조선)이 삼호지방산업단지에 입주하면서 대불산단은 음식료, 섬유 의복, 목재 종이, 석유 화학, 비금속, 철강, 기계, 전기 전자, 운송 장비 등 다양한 업종의 산단에서 조선업 특화단지로 변모한다. 조선업의 부침에 울고 웃는 산단이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대불산단 방문(2004년 7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대불산단 방문(2004년 7월 29일)
대불산업단지(2011년)
대불산업단지(2011년)


 

 

 

 

 

 

대불산단(현재
대불산단(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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