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Naming)과 프레임(Frame)
네이밍(Naming)과 프레임(Frame)
  • 영암군민신문
  • 승인 2022.07.29 14:38
  • 호수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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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br>문태고등학교 교사<br>도포면 영호리 출신<br>전남대학교 지역개발학 박사과정
박정용
문태고등학교 교사
도포면 영호리 출신
전남대학교 지역개발학 박사과정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위의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의 일부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존재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존재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 존재에 걸맞은 이름은 그 존재에 대한 인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과거 7080세대는 누구나 한 번은 이 시를 읊조리며 20대의 젊은 시절은 보냈을 것이다. 알맞은 이름을 붙여 불러주는 것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인식의 시작으로 여기며 그 존재들의 온전함에 젊은 열정을 불살랐을 것이다. 특히나 그 당시 운동권에 몸담았던 젊은 청춘과 학생들은 민주주의라는 존재의 온전함을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성장하여 사회의 주역이 되어 치렀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는 그들이 그토록 목말라했던 존재에 대한 인식 방법을 잊어버려 민주 진영의 실패한 정치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과 ‘검수완박’이라는 네이밍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중요한 아젠다의 실행이 잘못 붙여진 이름으로 인해 정권교체의 하나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탈원전은 더 이상 원자력 발전소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나라마다 탈원전 정책들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안전성 문제와 더불어 원전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처리의 어려운 점도 탈원전 정책에 탄력성을 보탰다. 결국 원자력 발전이 값싸고 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에너지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탄소중립 원칙과 위험한 원자력 발전 에너지에서 안전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 지점이 탈원전과 화석 에너지 감소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지점인데 거두절미한 ‘탈원전’이 국민들에게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은 정책을 계획하고 추진한 사람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촉발한 부주의한 네이밍에 있었던 것이란 생각이다.
원래 문재인 정부는 가동된 후 30년의 설계수명이 다하여 안전이 위협받던 월성1호기부터 단계적으로 영구 정지하고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하여 결과적으로 2083년에는 원전 제로(Zero)를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탈원전’ 보다는 ‘단계적 에너지 전환’ 정도가 오해를 부르지 않았을 적절한 네이밍이지 않았을까? 원래 정책 취지를 담지 못하는 이름을 지어 결국에 국민들이 당장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래서 한전의 적자가 늘어 조만간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는 불안감과 이를 침소봉대하는 언론의 나팔효과로 인해 세계적 추세인 깨끗하고 안전한 신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이 된서리를 맞게 되어버렸다.
‘검수완박’도 그렇다. 검찰이 가진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여 권력기관들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작동시켜 법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과격한 프레임에 걸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였다. 난항을 거듭하다가 지방 선거를 앞두고 실력으로 밀어부쳐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애초에 목표했던 결과를 달성하였다고는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잘못된 이름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뒤늦게 일부 진보진영 사람들이 ‘검찰 정상화’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지만 사후 약방문이 되어버렸다. 사실 검수완박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권력기관 간 권한과 책임을 정상화 시키는 쪽에 가까웠음에도 네이밍의 중요성을 망각한 오만에 가까운 큰 실수가 국민들의 오해를 산 것이다.
이제 새로운 지자체장과 지방의회는 내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준비를 할 것이다. 관행적으로 혹은 별생각 없이 정책과 비전에 이름을 주어 쓸데없는 오해를 낳아 좋은 정책이 표류하지 않기를 바란다. 존재에 대한 적절한 이름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프레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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