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재수첩 “공무원도 존중받을 권리는 있잖아요!"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
| 2025년 11월 07일(금) 10:03 |
송전선로 건설은 시급한 국가적 사업이다. 사업자인 한전은 물론 행정지원부서인 영암군은 이제라도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고, 보상대책 등을 제시하며 주민 의견을 들어야 할 때다. 하지만 먹혀들 여지조차 없다. 주민설명회는 개회도 못했다. 겨우 열린 회의는 고성 속에 파행했다.
극한 대립은 후유증을 낳는다. 9월 5일 금정면사무소에서 벌어진 ‘아줌마’ 발언 사태도 그러하다. 송전선로와 ESS시설 설치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13명이 면장실을 찾아 C면장 등 관계공무원들과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일은 벌어졌다. 면장의 발언도중 A씨가 면장을 향해 “어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어 A씨는 주위의 제지에도 “그럼 니가 아줌마지, 아가씨냐? 내말이 틀리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좁은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A씨는 지역 언론을 통해 “면장 발언이 너무 길고 반복돼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막히자, 너무 화가 나 그 표현이 나왔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지역 언론을 통해서는 “어디 면장이 말하는데 끼어드느냐”며 제지해 언쟁이 격화된 것이라고도 했다.
C면장의 말은 다르다. “대책위가 요청해 열린 공적인 대화 자리였다. 다른 일정이 있었으나 미루고 참석했다. 대책위 관계자 발언에 이어 정리 발언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위협적인 발언이 나왔다. 한 차례 제지에도 재차 반말과 혐오 표현을 했다”고 주장했다. “어디 면장이 말하는데 끼어드느냐”는 식의 제지발언은 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달이 난 뒤 한 달여 지난 10월3일 영암군은 C면장과 본청 인재육성체육과장을 맞바꾸는 인사를 했다. 10월13일에는 C면장이 A씨를 모욕 및 업무방해혐의로 영암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동안 사태를 해결하려는 금정면 지역사회 지도층의 적극적인 중재도, 본청 차원의 행정지도도 없었다. 고스란히 면장이 사태를 떠안아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속상하고 속된 말로 쪽팔렸다. 사태발생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려 했으나 이곳저곳에서 그날 상황을 떠올리며 ‘A씨가 면장 위에 있다더라’는 식의 수군거림이 지역사회에 난무했다. 모욕적 언사에 대한 사과는커녕 지역 언론까지 가세해 향응의혹을 보도했다. 도저히 인내하기 어려웠다. 법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C면장이 설명한 뒤늦은 고소이유다.
하지만 C면장의 뜻과 달리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아줌마 발언을 둘러싼 고소 사태가 송전선로 건설반대 운동의 주요현안 내지는 그 자체가 되어갔다.
실제로 한 지역 언론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고소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특히 한 지역인사는 “위에서 시킨 것 같다. 면장으로 있으면서 고소하면 면민과 대결구도가 되니 모양새가 안 좋아서 본청으로 들어가서 한 것”으로 전했다”고 보도했다. 또 “내가 아줌마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라는 A씨 주장을 담기도 했다. 문맥상으로 따지면 ‘위’는 영암군 인사권자다. 또 인사권자가 자신과 정치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은 A씨여서 고소하도록 시킨 것 같다는 얘기다.
영암군청 소속 공무원 700여명이 피고소인을 처벌해달라며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더 격해졌다. 지역 언론은 “행정의 중립성이 무너졌다”고 질타했다. ‘탄원서 서명을 추진한 주체가 국.과장 라인을 통해 하달됐다는 점’, ‘욕설과 물리적 위협 등 빈번하게 발생했던 악성 민원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영암군이 ‘아줌마’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유로 전 직원 탄원서 서명에 나선 것이 과연 ‘직원 보호’의 명분에 합당하냐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적시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단순히 고소와 표현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행정이 정치적 갈등에 연루됐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공무원의 사적 판단이 조직적 대응으로 확대되면서 ‘행정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지역사회 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A씨와 C면장의 개인적 다툼이 아니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전.현직 군수 두 세력 사이 알력 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몇몇 지역 언론의 보도들은 그 연장선에 있는 듯싶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 파장과 후유증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갈등이 그때까지 지속된다면 결과는 더 예측불가다.
A씨와 C면장은 연이어 경찰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경찰이 조만간 결론을 내더라도 사태는 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해결의 단초가 될법한 ‘진심어린 사과’는 아직 어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A씨는 대책위원장을 맡은 터라 그래도 지역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며 입장을 내고 있는 반면, C면장의 처지를 다룬 보도는 찾기 어렵다. 사태 해결의 단초라도 될까 싶어 C면장에 연락해 들어본 입장은 이랬다.
“공직자로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다.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해 그 모멸감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참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도 면민이니 다음날 만나서 악수하고 인사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계속적인 모욕과 근거 없는 비난이었다. 심지어 일부 지역 언론까지 가세해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참다 참다 견딜 수 없어 인사 조치를 자원했고, 고소를 결정했다.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으나 죽을 만큼 억울하다. 저 같은 공무원도 사람인데 존중받을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