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와 고봉(高峰), 편지로 논(論)하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2012년 05월 25일(금) 11:19
즉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거기에 편승하는 것이다’ 로 절충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퇴계가 주자의 이기론 중 주리론의 입장에서 주자의 견해에 충실한 반면, 고봉은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정(情)이므로 이 둘은 다 기가 발하는 것이며, 理와 氣로 나눌 수 없다며 퇴계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고봉에 의하면 주자의 성즉리에 의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이전의 상태가 성(性)이고 이 성이 도덕적 본성이고, 미발(未發)의 성(性)에 이미 理가 갖추어져 있음으로, 움직이기(發하기) 시작하면, 이는 정(情)으로 개인적 욕망을 의미함으로, 발하는 것 즉 움직이는 것은 모두 氣라는 것이다.
훗날 율곡은 사단칠정왕복서(四端七情往復書)를 읽고 ‘고봉의 글은 대쪽을 쪼개듯 분명한데 퇴계의 글은 앞뒤 말이 맞지 않는 곳이 많아 몇 번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불평하면서도 ‘고봉의 당당한 논리는 일시 재주 기운으로 그런 것이니 고봉의 학문이 어찌 퇴계의 도학을 당하랴’고 평했다.
퇴계와 고봉의 논쟁은 장장 8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퇴계는 이때 이미 학문에 있어 종장으로서의 위치에 있었고, 고봉은 이제 갓 출사한 약관에 불과하여 26년이라는 한 세대의 연령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학의 지적에 성심으로 답하고 논하였다. 퇴계의 이러한 학문에 대한 열린 자세는 오늘날 귀감으로 삼아도 충분할 것이며, 퇴계가 지금도 민족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라 하겠다.
본래 주자 등 송조 6현의 이기론 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 없는 기가 없고, 기 없는 이도 없다. 이가 있어 기가 있으니, 이는 근본이요 기는 부수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지만, 이기는 성질상 구분되고 가치적으로 이가 근본이라 하였다. 주자가 이런 이기론 을 주장한 이유는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등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맞아 누란의 위기에 처한 송의 한(漢)족을 理에, 거란과 여진 등의 이민족을 氣에 위치시켜, 화이(華夷)에 입각한 대의명분을 강조하여 중화민족의식을 고취시켜 한족의 대동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에 대하여 두 계통으로 발달하였다. 주리론(主理論, 理氣互發設, 理氣二元論)은, 주자의 이기론의 입장에 서서 이(理)를 본질로, 기(氣)를 현상으로 보아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면서 서로 의지하지만 이는 기를 움직이는 본원이라고 보는 견해로 퇴계를 주축으로 하는 영남학파가 받아들여, 조선말의 위적척사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주기설(主氣說, 氣發理乘一塗說, 理氣一元論)은 우주만물의 근원이 기이며 모든 현상은 이 기(氣)의 변화 운동으로 보아 이는 단지 기를 움직이는 법칙이라는 견해로 고봉의 주장을 율곡이 보완하여 기호학파가 이어받아, 훗날 개화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여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심성론은 그 후 남당(南塘) 한원진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 인간과 사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의 호론(湖論)과 외암(巍巖) 이간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인간과 사물이 본질적으로 같다)의 낙론(洛論)으로 발전하였는데 한원진의 지지자들이 호서지방에, 이간의 지지자들이 서울 낙하에 주로 살아, 이를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한다.
조선의 성리학에 있어서는 마음의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이처럼 인성론이 발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성리학은 개인의 도덕과 사회질서의 수립을 궁극의 목표로 하는 실천학문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우리 선조들은 대동 사회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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