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증발했다 덕석에 말린 콩깍지가 튀고 말벌 한 마리 처마 밑을 맴돌고 철봉대에 매달린 햇빛이 산발한 옥수수 머리에 불을 댕겼다 옥수수 껍질 속 알맹이가 익어가듯 벌거벗은 아이들은 올망졸망 커갔다 뒷산의 전설과 앞개울의 물소리를 실어나르던 바람, 여름동안 몇 번을 벗었다 다시 벗던 뙤약볕, 그렇게 벗은 여름의 등은 늘 흙갈색이었다 그 한 여름, 우물 속 냉수를 들이키듯 목이 아프다 우물의 수위는 왜 시간이 흐르면 낮아지는 것일까 자리를...
영암군민신문685호2021.11.19 14:42흙에서 자란 그대와 나, 흙을 파고 일구며 꿈을 키워 목민의 길 활짝 열고 전남도청 책상머리 함께 하였네 그대, 나라 심장부에서 애오라지 '성실'로 한 발짝 한 발짝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이었네 고향 군수 쌓아 올린 공든 탑 지금도 그 빛살 골골 스며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는데 울긋불긋 노을빛 물들기도 전에 어디서 불어 닥친 바람이던가 파릇파릇 고운 잎이여, 날개 없이 흩날려 가벼렸구나 나는...
영암군민신문684호2021.11.12 13:31웃어도 찡그려도 무섭게 화를 내도 허수아비 아저씨는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 참새는 벼알을 배불리먹고 쭈빗 세운 머리를 들고 고개 숙이지 못한 벼들은 허수아비를 원망해 보지만 허수아비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 하얀 얼굴에 가을빛을 담아 붉게 타오른다 박선옥 영암문인협회 사무국장
영암군민신문683호2021.11.05 13:45진하게 숙성된 가을향기 서늘한 바람사이로 거닐고 잠이 덜깬 아침 구름 사이로 스며드니 아름다운 풍경으로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귀뚜라미 귀뚤 귀뚤 애잔하게 목청 높여 가을의 아침을 깨운다 찻잔에 가을 한스푼 그리움 한스푼 담으니 아∼ 나도 가을이어라 김은순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81호2021.10.22 13:42가을바람이 어깨춤을 추며 온다 방앗간을 다녀 온 모양이다 참기름 냄새 고추 냄새 우리엄마 구슬땀 냄새가 향기롭다 띵동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배추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어머니 잘 받았어요 너무너무 맛있어요 가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팔순 노모는 오늘도 내일도 택배를 보낸다 김선희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80호2021.10.15 14:01웃는다 은행나무가 웃는다 마당 가득 웃음이 떨어졌다 웃음이 우습다고 뒹군다 웃음을 주워 치마에 담는다 치마가 설렌다 여자가 노랗게 웃는다 고도연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79호2021.10.08 14:271 바람 한 점 없는데 산들산들 나무숲이 흔들린다 청그늘 찾아드는 쇠박새 가녀린 발가락이 잔가지를 휘어잡는 찰나, 그만큼의 무게로 나뭇가지는 휘어진다 깍지벌레 한 마리 나뭇잎 터널을 내며 포복한다 그 순간 지구의 흔들림을 나무는 온몸으로 느끼는가 2 너와 나, 삶의 길에서 지워지는 목숨의 무게에 뒤뚱뒤뚱 흔들리며 걸어간다 마음의 가지에 사뿐 내려앉는 깃털 무게에 나 홀로 잔잔히 파문을 짓노니 흔들림 속에 균형을 잡...
영암군민신문678호2021.10.01 14:59고개 떨구고 가을을 알알이 매달고 있다 여문 생각들로 허리가 휘었다 정수리에서 구름이 기웃거리고 그의 몸에 구름 그림자가 물든다 담장 위 조롱박이 술병처럼 매달렸다 잎사귀 사이 하늘이 떠 있다 달작쌉싸름 하던 막걸리 맛, 기분 좋게 취한 아버지가 담 모퉁이를 돌아온다 하늘이 더 높다 무르익는다 어미 찾는 새끼노루 울음소리가 지붕을 넘어 온다 누가 먼데 소리를 잡아당기나 보다 정정례 2020년 월간...
영암군민신문677호2021.09.17 14:20신새벽 아지랑이같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운 월출산 골짝골짝 하늘로 하늘로 회오리쳐 솟아오른다 하늘땅의 기운 한데 엉겨 일구어낸 맑은 정기(精氣)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마다 가득 서려 기상 넘쳐흐른다 월출 영봉마다 기(氣)빛살 번뜩이며 낭주골 고을고을 스며들어 집집마다 사람마다 생기 넘치고 뿌리 깊은 문화꽃 향기 풍겨 난다 전석홍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전남도지사 역임 시집 「담쟁이 넝쿨의 노래」 등 다수
영암군민신문674호2021.08.27 12:06멀리 있기에 그립고 곁에 있어 더 그리운 사람아 멀리 있기에 가끔 잊었지만 곁에 있어 늘 설레이는 가슴 한번쯤은 잊고 싶어 멀리 떠나가면 그림자 처럼 다가와 가슴에 불지르는 밤새워 잿불로 사그라져도 설레이는 그리움도 사그라질까 곁에 있어 늘 가슴 설레이는 사람아 오금희 영암문인협회 회원 한국순수문학작가회 회원 시집 '찔레꽃 필무렵'
영암군민신문673호2021.08.20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