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뺏어서야…
검색 입력폼
 
오피니언

밥그릇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뺏어서야…

김 재 원 전남도 종합민원실장

몸이 비대해진 아이는 적당히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 아이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내일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반면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아이에게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야만이 균형 잡힌 몸으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몸집이 비대해진 아이에게 기름진 음식을 더 주겠단다. 더 비대해져도 상관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맘껏 먹으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자식은 못 본 척 한다. 아니 밥그릇을 채워주기는커녕 그것마저 뺏어버렸다. 며칠 전 정부에서 발표한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이 그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으로 아사(餓死) 위기에 내몰린 지방은 그만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해 어렵사리 구축해 가고 있는 국가 균형발전의 틀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처사다. 지난 10월30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뼈대로 하는 국토이용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기업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건 이 방안은 대기업의 수도권산단 공장 신.증설, 서울시내 도시첨단산업단지 개발 허용 등을 담고 있다. 말이 효율적인 국토이용 방안이지 수도권규제 전면 완화, 수도권이용 활성화 방안에 다름 아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미명 아래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국가적 책무인 국가 균형발전을 정부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다른 정부도 아니고 이명박정부 스스로 약속한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규제 합리화를 기조로 한 균형발전 정책도 내팽개치고 말았다.
이명박정부는 그동안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건설지원 대책 등 각종 경기부양책을 수도권의 입맛에 맞춰 왔다. 이제 그 꼼수의 끝자리에서 전격적인 수도권 규제완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지방경제를 외면하는 수준을 넘어 가히 지방경제 죽이기라 할만하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곳은 바로 지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부양을 이유로 수도권 규제완화책을 강행하고 나섰다. 이 정책이 지방에 얼마나 재앙적인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인지 자명하다. 비수도권 시.도지사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에서 내놓은 자료를 볼 필요도 없다.
곧바로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움직임이 유보되거나 U턴할 것이다. 이는 지방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지방경제 침체 및 공동화로 나타날 것이다. 미래첨단산업에 대한 접근도 구조적으로 차단돼 낙후의 악순환은 고착화되고 말 것이다.
경제,교육,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수도권 집중과 지방과의 격차심화는 인구유출을 가속화시켜 지방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발표가 수도권 규제완화의 끝이 아니라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 추진 등 본격적인 시작이 돼 지방의 생존기반을 송두리째 붕괴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수도권 집중화에 따라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11%에 해당되는 수도권에 48%의 인구가 집중해 있고, 이에 따른 경제,사회적 집중 역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상태다. 여러 정부를 거쳐 오는 동안 나름대로 수도권 규제를 해온 이유다.
오죽하면 참여정부는 인위적인 분산정책까지 펴면서 균형발전을 꾀해 왔을까. 그러나 수도권의 비대화와 비수도권의 위축현상을 막지 못했다. 아니 갈수록 심해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의 명분으로 경쟁원리와 인센티브를 내세우고 있다. ‘친기업적인 정부’답다. 하지만 균형발전에 관한 한 경제논리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경쟁이란 본디 동등한 조건에서 시작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100m 달리기를 하면서 누구는 80m 앞에서 출발하고, 또 누구는 50m 앞에서 출발한다면 경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헌법도 국가의 균형발전 의무를 직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국민이면 어디에 살든지 국가자원을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제라도 국제적 신용위기와 단기 경기부양을 빌미로 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정부 스스로 약속한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규제 합리화 약속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은 물론 모든 분야의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돼 비대해지고, 비수도권은 지금보다도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비수도권은 물론 수도권까지도 공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 뻔하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는 물론 영양과잉 상태에 있는 아이까지도 다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결국은 병들어 죽게 될 것처럼….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