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좀 찌질하다.
엊그제(10월 13일) 한겨레신문에 우원식 의원이 이해찬 당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바로 그 전날(10월 12일)에는 문화일보 허민 정치부장이 쓴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이 ‘문, ‘어부지리’ 전략뿐인가’였다.
우원식 의원의 취지는 간명했다.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승리를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선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한 인적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였다.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래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이 일반 여론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F. D. 루즈벨트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얘기하고 있는 걸 소신있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우원식 의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린다.
허민 부장의 칼럼 역시 단순 명쾌하게 우리 후보의 특징과 한계를 짚어내고 있다. 친노 프레임을 벗어버리려는 의지는 보여주지 못한 채, 박근혜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악재에만 편승하려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 안팎에서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지적했던 내용 그대로이다.(보수적인 문화일보의 일개 칼럼을 가지고서…, 하는 사람 있다면 그저 웃겠다.)
요새, 우리 민주당, 어째 좀 이상하다. 초조한 것 같고 편협해진 것 같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처신이 특히 그러하다.
얼마 전 우리 당 선대위 관계자 한 분이 안철수 후보(현상)를 “소멸해가고 있는 태풍”이라고 비유했었다. 당시 함께 있던 사람들이 열호했다고 들었다. 우리 고정 지지자들이 열호할 때 안철수 지지자와 중립적 국민 여론은 어떠했을까? 긴 말 접어두고, 그 언급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몽환(夢幻)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자의 태풍 발언은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올 것이었다는 점에서 정말 어리석었다. 그 관계자의 비유와 바람대로 안철수가 소멸해버리면, 우리의 대선 승리 가능성도 함께 소멸해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에서 그 관계자는 정말 위태위태하도록 어리석었다.
사실, 지난 9월 19일 안철수 교수가 출마선언한 것은 야권 승리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민주당으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그 9월 19일 전까지 많은 야권 지지자들이 혹시 안철수 교수가 출마 포기선언을 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일들을 지금 우리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 출마선언을 한 것은 민주당으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안철수 교수는 민주당에게 적어도 두 번에 걸쳐서 큰 도움(또는 은혜)을 주었던 사람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 사이의 극적인 후보 단일화 과정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새누리당을 저지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고, 오늘과 같은 자랑스러운 박원순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을 확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의 대선 출마선언을 통해 안 교수는 밋밋했던 야권에 기대감과 역동성을 부여해준 결정적 계기를 열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에게 고마운 존재다. 반면, 굳이 따지고 볼 때, 우리 민주당이 안 교수에게 그렇게 도움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사실관계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민주당이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리도 빨리, 그리고 이토록 무경우하게, 그를 몰아붙이며 적대시하고 있다. 이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곤란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후보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일들이다.)
며칠 전(10월 11일) 서울대 조국 교수 같은 분은 “양측(문재인·안철수)의 신경전이 가열되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두 후보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할 것으로 본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도 있다. 옳은 분석이고 바른 평가다. 시중에 나가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 우리 당 주변의 행태에 염려를 하고 있는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최근(10월 9일) 민주당 주요 관계자 한 분이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불가능한 얘기이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 또한 지극히 짧은 단견이라는 점에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주장이었다. 그분 말처럼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게 도대체 어불성설이고,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뒤늦게나마) 이(무소속의 한계)를 깨닫고 “무소속으로는 안되는 것 같으니 이제 나는 모든 걸 접겠다”고 하면서 출마 포기선언을 하고 두문불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것이 민주당에게 도움이 되며 문재인 후보에게 이로울 것 같은가? 안철수 후보를 향해 날린 화살은 바로 그대로 문재인 후보를 향한 화살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어찌 이리도 모르는 걸까? 선대위 주변 일부 충성분자들, 참 찌질찌질하다.
그렇다. 민주당 내의 관점(또는 시각)이 정리정돈될 필요가 절실한 게 바로 지금이다. 안철수 없는 문재인은 무의미하다. 이길 가망성이 낮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재인 없는 안철수 역시 허망하긴 매일반이다. 안철수 혼자 박근혜 후보를 감당하는 건 현재로선 역부족이기 때문이다.(전자보다는 후자의 상황이 그래도 좀 더 낫다는 점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상보적(相補的)이다. 가끔 쓰는 표현대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는 얘기다. 적대적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포지티브섬의 관계인 거다. 사실, 이건 긴 설명이 필요없는 대목이다. 문 후보 주변의 일부 열혈주의자들을 빼놓곤 거의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는 ABC이고, 상식 중의 상식이다. 국민적 상식에 속하는 이 관점과 시각이 일부 민주당 구성원들 사이에 이토록 덜 공유되고 있는 이 현실이 불길하다.
급기야 엊그제(10월 13일)는 문 후보 자신이 안철수 후보에게 “민주당에 입당하라”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왜, 안철수 후보가 우리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것인가? 안 후보가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얘기를 해본 적 없고, 민주당의 입당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없었고, 이 나라에 민주당 일당만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무게와 경우없이 ‘내 당으로 들어와봐라’는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정신세계가 경이롭다. 그같이 도발적인 ‘공격’(그렇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공격이었다!)에 안철수 후보측이 뭐라고 응대하고 나올 거라 예측했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일각의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는 (무소속) 후보에게 (우리 당에) 들어오면 후보 자리를 내드릴테니 부디 입당해달라는 제안이었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닌 그 어떤 입당 촉구 발언도 국민적 빈축을 살 뿐, 진정성있게 해석될 순 없었음을 정말 몰랐을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안철수 후보측에서 우리 문재인 후보에게 “지금 당장 민주당을 탈당해라. 그리고 무소속으로서 함께 정치혁신의 길을 걸어보자”라고 제안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 입당 촉구 발언 당사자에게 꼭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역지사지력(易地思之力)이 신뢰의 제1 조건이다.
지금 문재인 후보가 (기껏 의석 수 2위인) 정당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는 무소속 후보가 아니라며, 뻐기는 듯한 모습은 세 명의 후보 중 3위를 달리는 후보자의 열등감 감추기처럼 보인다. 엄격하게 얘기해서, 위에 인용했던 세 가지의 발언들이랄까 해프닝들은 모두 민주당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굳이 도움이 되는 쪽이 있었다면 그건 우리 쪽이 아니라 오히려 새누리 쪽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졸렬한 발언들은 모두 해당적(害黨的)이었다. (정말, 이 대목은 한 번 따지고 파헤쳐져야 한다!)
우리 민주당과 문 후보가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하나 더 바랄 게 있다면, 안철수 후보의 눈 속에 들어 있는 티끌만 보려 하지 말고, 우리 민주당 눈 속에 들어 있는 대들보도 좀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안철수 후보측도 줄기차게 정치혁신을 외치고 있고, 우리 당 내에서도 많은 의원들이 인적 쇄신을 포함한 당 쇄신을 요구하고 있고, 우리가 기득권 안주 세력이라며 그렇게도 매도하고 치부해온 새누리당 쪽에서조차 인적 쇄신을 해가고 있는 이 마당에, 유독 유독 이 위대 위대한 제1 야당 민주대통합당의 후보만이 인적 쇄신 얘기는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고 나오는 그 배짱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한 번 좀 찬찬히 (이해득실적 차원에서라도) 음미해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 좀 ‘초선일지’가 길어졌다. 그렇잖아도 지금 국정감사 중이라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계속 생기니 더 바쁘다. 이제 끝마쳐야 하겠다.
요컨대, 첫째, 문재인과 안철수는 상호 비방하고 자극해선 안된다. 그러면 서로 죽는 거다. 새누리당이 가장 좋아하는 구도가 바로 그거다.
둘째, 인적 쇄신을 포함한 민주당의 쇄신 작업은 대선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자기 쇄신과 자기 희생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어영부영인 채로 선거 치러보겠다는 정당에게 국민들이 몰표(50% + 1명)를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재인 후보의 당내 인적 쇄신 외면 행태는 이번 대선 과정 내내 악재로 남아있게 될 것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셋째, 부족한 나는 민주당을 위한 등에(gadfly)와 카산드라(Cassandra)의 역할을 마다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2012년10월16일>
인적 쇄신 없는 정치 쇄신은 우스꽝스럽다
그제(10월 21일) 우리 민주당 후보 선대위 소속 아홉 분의 퇴진 발표가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환영한다.
‘노무현 실정’(※우리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대통령 중 최저 5.7%였던 걸 잊어선 안된다.)을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그 때 청와대에 함께 있었던 문재인 후보와 그 때의 청와대 비서들이 또 다시(문재인 후보와 함께) 그대로 청와대로 간다면 뭐가 되겠느냐고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부분적 안도감을 준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더 좋기로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도 청와대와 내각 정도에는 따라가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뒤따랐어야 했다.)
그리고 그제의 이 발표가 민주당 인적 쇄신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환영한다. 사실에 있어서, 아홉 분의 퇴진과 민주당 쇄신은 별개다. 앞에 것은 ‘친노’ (쇄신) 관련이지만, 뒤에 것은 민주당내 ‘구태 쇄신’ 관련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쇄신은 제도 쇄신, 문화(관행과 질서) 쇄신, 인적 쇄신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 제도 쇄신, 문화 쇄신, 인적 쇄신 중 지금 가장 시급한 게 인적 쇄신이다. 민주당이라는 정치권(정치세력)이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 쇄신과 자기 희생의 길을 걸을 때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 힘으로 민주당(또는 야권)의 대선 승리의 ‘문’이 열린다.
어제 문재인 후보가 이러저러한 새로운 정치개혁 공약들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약간 이론이 있지만) 대체로 잘 제시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별 큰 감동이 없다. 있어야 할 알맹이, 즉 인적 쇄신 부분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문 후보가 인적 쇄신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자기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께선, ‘그래, 선거 때 되니까 정치인들 좋은 얘기들 많이 하는데, 정작 본인들은 뭘 포기하고 희생하겠다는 거냐’고 묻고 있는 거다.) 어제 문 후보가 얘기한 정치 쇄신 공약들은 어느 것 하나도 문 후보 개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다. 문 후보 자신이 손해보거나 내놓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문 후보 자신의 가족, 재산, 권력, 지지기반…… 이런 것들은 그대로 다 지키고 있겠다면서 그 대신 남들이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쇄신이란 이름으로 내놓아선 효능이 떨어진다. 물론 진정성도 반감된다.
내가 문재인 후보라면 두 가지를 당장 내놓겠다. 하나는 문 후보의 국회의원직을 내놓겠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또 하나는, 이게 정말 중요한데, 이해찬-박지원 두 분을 내놓겠다. 이해찬-박지원은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으로 문 후보의 당내 경선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때문에 당은 사분오열되었다. 그리고, 좀 뭣한 얘기지만, 이-박 두 분이 더 오래오래 민주당 지도부에 있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측이 새누리당쪽이라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어쨌든 이-박 두 분은 문 후보가 가장 아끼지만, 또 한편 구태의 표상이 되어 있다. 자기가 아끼는 걸 내놓아야 희생이고 쇄신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 필요한 까닭이다.
오늘 ‘한겨레’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3등으로 고착되는 것만으로도 이-박 체제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해찬-박지원) 두 대표의 퇴진 여부가 민주당이 혁신할 것인지 이대로 버틸 것인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정치 쇄신의 핵심이 인적 쇄신이고, 이 인적 쇄신의 정점에 이해찬-박지원 두 분이 있다. 이것은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 집단적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점의 대선 길목에 가로놓인 최대 걸림돌의 문제이다. 일언이폐지하고, 민주당의 인적 쇄신은 이해찬-박지원 두 분의 퇴진(※’퇴진’은 두 분이 현 직위로 각종 행사와 회의를 더 이상 주재하지 않고, 그 직함으로 언론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에 의해서 완결된다. 이것 없는 그 어떤 정치 쇄신 공약도 다만 공허할 뿐이다. <2012년10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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