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전야제를 치렀던 금정면 행사에 가서 축사 말씀 드린 뒤, 장흥군으로 넘어와서 장동면 초등학교 총동문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부산면 초교 총동문회 창립총회에도 갔다. 지금은 잠시 쉴 겸 어머님이 계시는 강진읍 집으로 들어와 있다.
그런데 조금 전 부산면 행사 때의 일이다. 유독 오늘 날씨가 화창하고 포근해서 운동장에서 열리는 행사는 훈훈해서 조금도 쌀쌀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모시겠다”면서 나를 무대(그 옛날 교장 선생님께서 훈시를 하시던 그 구령대) 위로 불러 올렸다. 나는 무대에 올라 간단한 축하와 환영의 인사 말씀을 드렸다. 짧은 내 인사 말씀이 끝난 뒤 동문회 임원인 그 사회자가 운동장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있던 동문 청중들을 향해 “다시 한번 황주홍 국회의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면서 박수를 유도해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 숙여 감사의 뜻으로 거듭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그 때 이 사회자께서 이렇게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동문 여러분, 이해찬-박지원 두 사람은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 황주홍 의원이 이해찬-박지원을 물러나게 해버릴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힘찬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운동장의 많은 동문들께서는 박수로 호응해주었다.
그렇다. 아아, 이것이 민심이고 국민 여론인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박 퇴진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이 시대 국민 여러분들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정치 불신의 정중앙에 남의 탓만 할 뿐 자기 희생은 도외시하는 구태 정치가 놓여 있고, 이 구 정치의 두 상징이 이-박으로 표상되고 있음을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박의 거취 문제는 민주당이 정치 쇄신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시금석(리트머스 테스트)이 되어버렸다. 인적 쇄신 없는 정치 쇄신은 기만이고, 이-박 퇴진 없는 인적 쇄신은 허구다. 이-박 퇴진 없이 거론되는 ‘새로운 정치’와 ‘정치 쇄신’은 모두 공허한 정치의 장난일 뿐이다. 이-박 퇴진은 야권의 대선 승리를 위한 진정한 속죄의 첫 걸음이며 희생의 첫 단추이다.
오늘 대한민국 남단 정남진 부산면에서 있었던 작은 일화는, 이것이 소소한 개인적 집착이라든가 개인적 결단의 차원을 한참 넘어선, 한 시대적 과제임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2012년11월3일)
그제(11월 2일) 아침 정치 원로 한 분이 전화통화 중 불쑥 이런 말씀을 했다. “이해찬이하고 박지원이, 물러나는 게 좋아!”
현재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이신 이 분께선,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덧붙였다. “이해찬, 박지원이 (국민) 여론이 아주 안 좋아. 정치라는 게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왜 저렇게 계속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러면 안 좋아.”
깜짝 놀랐다. 여태까지 현재의 당 지도부를 지지해오신 분인데다가, 내가 그런 말씀을 먼저 꺼내거나 여쭙지도 않았는데 당신께서 먼저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평결’을 내려버리시는 것이어서였다.
아, 왜 이걸 이해찬-박지원 두 분과 문재인 후보는 모르고들 계시는 걸까? 아니 어쩌면, 왜 애써 진실을 이다지도 불편해 하시는 걸까?
(2012년11월4일)
어제(11월 6일) 선거법 재판 2차 공판이 있었다.
지역구내 장흥읍 소재 장흥지원(법원)에서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가 넘도록 증인들 심문 중심으로 재판이 있었다. 어제 결심(結審)을 했다. 검찰은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우리 쪽 변호인은 선고유예를 바란다는 최후 변론을 했고, 나도 배려와 선처를 바란다는 최후 진술을 했다. 오는 11월20일 최종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4·11총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뒤 8개월만에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온 거다. TV와 신문 등에 ‘황주홍 의원, 선거법 위반 경찰 조사(또는 기소)’ 등으로 이미 보도가 나왔었기 때문에 주위의 여러 분들이 이 내용을 알고 계신 듯하다.
‘죄’ 짓고는 못 산다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재판이 끝난 뒤 어머님이 계시는 강진 집에서 잤다. 자기 전 어두운 집 마당을 2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걸었다. (2012년11월7일)
어제(11월6일) 아침 7시 의원회관 제1 세미나실에서 ‘쇄신의원 토론회’가 있었다. 어제로써 벌써 7회가 되었다. 쇄신의원 토론회는 민주당 쇄신파들의 문장(紋章)이 되었다.
어제 토론회는 서울대 법대 학장이신 정종섭 교수가 주제발표, 문병호 의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수술, 정치 쇄신의 해답’이라는 주제였다. 최근 우리 쇄신파 의원들이 ‘이해찬-박지원 퇴진’ 문제에 집중했던 걸 생각하면, 다소 의외랄 수 있는 주제였지만, 어제의 주제 역시 해놓고 보니 시의적절했고, 교훈과 큰 과제를 남겨주었다.
정종섭 교수께서는, 전 세계의 선진국들 중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가 거의 없고, 특히나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이어서 아무리 수정하고 보완을 해도 그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들고 만다는 것, 따라서 의원내각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문병호 의원께서도 비슷한 취지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삼권분립을 이루고, 민생에 민감한 국회의 기능 강화를 통해 관료들을 통제하고 대기업 재벌들을 제어할 수 있어야 이 나라 상층부가 쇄신되는 거라고 역설하였다.
나도 의원내각제를 적극 옹호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최근(10월 26일) 영국(캠브리지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다. 나는 이 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 의원내각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오늘 이 토론회와는 주제의식이 우연히 일치한 거 같다.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우리 한국 정치사회가 의원내각제를 보다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국의 정치문화와 관련해서이다. 흔히 우리 정치문화를 ‘준봉(遵奉)적 정치문화’라 한다. 위에서 지도자가 이끌면 아래는 대체로 그것을 받드는 문화, 또 누군가가 통솔해주기를 늘상 바라는 정치문화라는 뜻이다.(이런 정치문화를 참여적(participant)인 시민(의식) 문화(civic culture)로 성숙시켜가야 한다는 가정이랄까 전제를 깔고 있다.)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통령제는 이같은 준봉적 정치문화를 완화하거나 해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심화·공고화하는 제도적 기능을 한다.(현행 제도는, 대통령을 제왕으로, 국민을 추종자로 급격히 등급화한다는 거다.) 따라서 의원내각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수직적 권위주의를 완화·분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관료제의 효과적 통어를 위해서 의원내각제가 절대 필요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큰 과제는 관료(제)에 대한 통제 문제다. 흔히, 교양 수준으로 얘기해서,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 또는 전체주의라고 배워왔거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건 이미 적실성(適實性)을 잃은 ‘낡은 교양’이다. 실질적 의미에서, 민주주의(democracy)의 반대말은 관료제(bureaucracy)다. 현대 민주주의는 관료제(관료주의)에 의해 치명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관료들은 국민들에 의해서 직접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덜 반응적(less responsive)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관료들은 대통령과 동료 관료조직과 대기업의 목소리에 더 예민하고 더 빈번히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에 의해서 선출되고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접촉하게 되어 있는) 의원들이 내각의 장차관 자리를 직접 맡음으로써 관료들을 보다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그래야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보다 더 잘 실천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자유화와 민주화를 넘어, 참여민주주의(①)와 경제민주화(②)를 얘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의원내각제야말로 이 두 과제(①②)를 가장 진지하고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제도라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을 계기로 국회 내에 ‘의원내각제 연구모임’ 같은 것을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대통령제에 따른 ‘제왕적 승자독식주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정치 쇄신을 바라는 국민 여러분의 새 부대에 의원내각제라는 새 술을 담아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꿈을 꾸어보고 있다. I have a dream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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