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채용에 대한 역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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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채용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이원형 본지 객원논설위원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다. 이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국가유지의 기본이며 국가발전의 초석이요, 적절한 인재의 선발과 배치는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통합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정권에서 특정지역의 우대와 차별이 반복되어 국가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국민통합의 장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소통과 통합이 시대정신으로 요구되는 오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적절한 인재등용은 국가경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본요소이기 때문에 최선의 인재 등용방안을 강구하였다. 이에 역사적으로 어떠한 인재선발을 하였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중국의 고대 즉 하, 은, 주와 춘추전국의 제자백가 시대에는 군주가 널리 현자 즉 인재를 구하였고 또한 인품을 갖춘 인재들이 세상을 주유하며 자기의 경륜을 펼칠 기회를 제공할 군주를 찾아 다녔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의 주유천하가 같은 맥락이다.
그 후 통일된 중앙집권 국가가 형성된 시기, 즉 한(漢) 나라 시대에는 유교를 관학으로 채택하여, 수도에 태학이란 학교를 설치하고 오경박사를 두어 전문으로 오경을 교육하여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낭중(郞中, 관리후보생)으로 발탁하여 관리가 점차 유교 교육을 받은 태학출신자로 충원 되어졌다. 지방에서는 수시로 인재를 구하여 현량방정, 직언극간을 할 수 있는 효행, 청렴한 현량을 천거토록 하여 중앙에서 선발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효렴과(孝廉科)를 시행하였다. 이는 추천과 시험을 병행하여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라 한다.
위진(魏晉)시대에 추천에 의한 관리 선발 제도인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 구품관인법)를 실시하여 지방에 숨어 있는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였다. 이는 주. 군에 중정관을 두어 그들로 지방의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다. 중정관은 현지사정에 밝은 그 지역 출신의 고관을 임명하였다. 중정관은 그 지역의 여론 즉 향론을 살펴 덕망과 재주 있는 인재를 9품으로 분류하여 천거하였다. 중앙에서는 지방에서 추천된 향품(鄕品)에 따라 관리로 임명하여 관품을 주었는데, 일반적으로 향품에서 추천된 등급보다 4품을 내려 관품을 주었다.
이 방법은 향론에 의해 덕망과 재주를 겸한 인물을 추천으로 선발하려는 취지는 좋았으나 그 당시 지방호족 세력이 지방의 여론을 좌우하여 호족의 자제가 상품에 추천되어 고위관직을 독점하여 문벌족의 탄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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