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비(白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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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白碑)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 33-1에 가면 작은 무덤 앞 직사각형의 대석 위에 호패형의 비(碑)가 있다. 비문의 내용이 없어 백비(白碑)라고 부른다. 전국의 수많은 기관단체들이 줄지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무덤의 주인인 조선 중기의 문신 박수량(朴守良:1491∼1554)을 본받아 조직 내 청렴문화를 다지기 위해서다.
박수량은 본관은 태인, 자는 군수, 호는 삼가이다. 장성에서 태어나 1513년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승정원 정자를 거쳐 1522년에 지평이 되었고, 헌납, 당령, 함경도경차관, 나주목사 등 내외 요직을 두루 지냈다. 좌찬성과 호조판서, 중추부사를 지낸 뒤 64세에 병으로 죽었다.
38년 동안 벼슬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치적을 쌓았고 당대 학자들과 교류하며 존경을 받은 그였지만 죽은 뒤 남은 양식이 없어 초상조차 치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대사헌 윤춘년이 이런 상소를 올렸다. ‘박수량은 청백한 사람이라 멀리 서울에 와서 벼슬을 하면서도 남의 집을 빌려 살고 있었으므로 그 고향인 장성으로 돌려보내 장사지내고자 하오나 도저히 그 자력으로써 할 수 없사오니, 만일 이런 사람을 국가에서 표창해 주면 모든 청백한 관리들에게 크게 장려될까 하옵나이다.’
명종은 이를 듣고 슬퍼하며 서해 바다의 돌을 골라 비를 내리라 명했다. 또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하고 그의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해 백비라고 부르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선한 고위급 인사들의 신상을 털어보니 가관이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거액의 국외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결국 사퇴하면서 고위급 인사 가운데 중도 탈락자가 7명으로 늘었다. 서민들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치부와 온갖 의혹은 과연 이 나라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온전한 이가 몇이나 될까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나 홀로’인사 또는 ‘불통’인사가 낳은 대형 참사가 분명한데 정작 책임 있는 해명 한마디도 없으니 구제불능의 답답증까지 느껴진다. 정녕 이 땅에는 청백(淸白)의 씨가 말라버렸을까?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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