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관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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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관리했나?

본지 객원논설위원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로 짜증스런 나날의 연속이다.
이러한 날씨보다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지난 2007년 남북정상 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의 유무를 두고 우리 여야 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소모적인 정쟁이다. 작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NLL 포기 발언을 자유 민주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희석시키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유령처럼 되살아나 각 당파의 정략에 따른 온갖 편법과 불법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니 급기야는 대통령 기록관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는 초유의 사태에 우리 국민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대통령 기록물의 부재 즉 사초(史草) 분실이라는 국기 문란 사태를 보면서 과연 우리 조상들이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관리했나를 알아보고자 한다.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100대 사건 중 1위는 금속활자이다. 인쇄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온 금속활자의 발명은 인간의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전 세계 각지로 신속히 전파하여 문화와 문명을 귀족 등 소수의 전유물 아닌 대다수 인류가 향유 할 수 있도록 보편화와 일반화를 가능케 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금속활자는 144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이보다 훨씬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의종 때 최윤의(崔允儀)가 왕명을 받아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이란 책을 저술하고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한다. 고금상정예문이란 예법에 관한 고금의 글을 모아 엮은 책으로 1234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니, 구텐베르크보다 무려 2 백 여 년을 앞선다.
그리고 고려 우왕 3년 1377년에는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직지심체요절 (直旨心體要節)이란 책을 지어 금속활자로 인쇄했다고 한다. 우리가 직지라 부르는 이 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말하는 것으로 석가모니의 직지인심견성성불의 요체를 설명한 것으로 그 하권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의 인쇄본으로 공인된 책으로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것 역시 구텐베르크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이다.
또한 목판인쇄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으니,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두루마리 형태의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8세기경 인쇄 된 것으로 세계 최초의 목판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로서 앞에서 언급한 직지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역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겼으니 그 유명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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