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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다. 지리적으로 지척인데 마음으로는 아득하다. 일본 이름이 붙여진 것은 670년이다. 그 이전에는 야마도국(大和國)이라고도 했으며 흔히 왜국이라 불리었다.
이때까지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문화적으로 뒤져 백제, 신라, 고구려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백제와는 가까워, 인적 물적인 수용을 많이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의 토양을 다졌다.
알려진 바와 같이 왕인박사께서 일본 응신왕의 초청을 받아 405년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학문과 도의를 가르치고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백제 성왕 때는 불교가 일본에 전해졌으며, 성덕태자가 중심이 되어 아스카문화의 꽃을 피우게 했다. 고구려 담징의 법륭사 벽화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문화의 발자취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이 통일의 길로 들어선 것은 1590년이다. 천하통일의 꿈을 품은 오다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풍신수길이, 국내 평정을 마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이때 우리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갔고, 도자기 기술자를 비롯한 여러 장인들을 데려 갔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도자기는 우리 선대들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왜구에 대해 한마디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이 통일되기 전, 대마도를 비롯한 구주일대는 척박한 지역으로 가까운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지역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해 왔다.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해적행위가 지속되었다. 세종대왕 때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치게 한 것도 왜구의 본거지를 무찌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여 대문을 잠그고 있을 때, 일본은 서양 각국에 젊은이들을 유학 보내 사람을 기르고 선진 문물을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뒤처진 아시아를 벗어나자는 탈아시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통해 내부적으로 근대화를 꾀하면서 힘을 길러 갔다. 그 축적된 힘으로 한국과 만주를 그들의 세력 하에 넣으려는 책략으로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일으켜 드디어 한국을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우리의 문물을 받아들여 눈을 뜬 일본이 서양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여 우리를 앞지른 뒤 우리의 국권을 빼앗아가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일본은 무모하게도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우리 젊은이들을 군대로 입대시키고, 탄광이나 전쟁터의 노무자로 끌어갔으며,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종군위안부로 삼았다.
나는 어렸을 적 마을 한 청년이, 노무자로 끌어가려 잡으러 다니는 관리에게 쫓기어, 장천초등학교 측간으로 도망치는 것을 목격한바 있다. 다행히 그분은 잡히지 않았다. 귀가 약간 어두운 한 청년이 집에 있다 끌려가 종전 후 소식이 없었다. 또 처녀들을 종군위안부로 잡아가기 때문에 결혼을 빨리 해 버리는 광경을 보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아베 수상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반성은커녕 사실을 부인하면서, 1993년 고노 관방장관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 사실에 대해서도 ‘침략에 관한 정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1995년 무라야마 수상이 일본 식민지지배와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아마 담화’까지 원점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또한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문제로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함께 냉전시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고수해 왔고, 동북아의 자유민주주의 기수로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 왔으며 무역과 인적, 문화적 교류가 어느 나라보다 많았다. 대북관계의 대응에 있어서도 미국, 일본, 우리나라는 함께 보조를 맞추는 위치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우경화로 치달은 일본 아베 정부는 국내 정치만 염두에 두고 반성 없이 사사건건 우리나라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정부는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이 일본에게도 궁극적 이익임을 자각해야한다. 그리하여 침략사실과 종군위안부 및 강제징용 등에 대해 솔직히 시인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독도도 역사적, 실질적으로 한국령임을 인정하고,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시정하는 등 우호적인 자세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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