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北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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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北風)

‘북풍(北風)’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때는 1996년이다. 제15대 국회의원을 뽑는 4·11총선이 있기 며칠 전 판문점에서 벌어진 북한군의 갑작스런 무력시위를 일컬어 북풍이라 했다. 즉 ‘북한 변수’를 말함이다. 보통 선거 전에 발생하는 북한의 돌발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이 북풍은 거의 항상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이전에도 북풍은 있었다. 멀게는 1987년 대선 전 발생한 KAL기 폭발 사건 및 선거 전날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1992년 대선 전에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 등은 북풍의 대표적 사례다. 두 사건은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와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북한 변수는 집권세력이 위기를 벗어나거나 다수 국민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할 필요가 있을 때 항상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하던 카드였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NLL 포기논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 그리고 정부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제출한 것 모두 엄밀히 따져보면 북풍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정권이 꺼내든 북풍의 다른 이름들인 것이다. 지금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이런 매카시즘의 목표는 당연히 진실이 아니다. 역대 정권이 휘둘렀던 북풍의 실체는 오히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이념의 폭력이었던 것처럼.
요즘 북풍은 가끔 ‘지역감정’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호남인을 근거 없이 ‘종북좌파’내지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는 일이 그것이다. 심지어는 ‘호남하면 부정, 반대, 비판, 과거 집착 등 4가지 단어가 떠오른다’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애초에 박정희가 그 싹을 키웠던 지역감정은 이제 북풍과 한 몸이 되어 정통성의 위기를 벗어날 탈출구로 쓰이고 있다. 감춰진 권력의 폭력적 광기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지역감정까지 동원한 ‘종북몰이’의 치명적 결함은 역시 ‘진실의 결여’다. 언제나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것도 조만간에 말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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