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생산하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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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쌀을 생산하는 아픔’

정기영
세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풍년이다.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에 비해 5.8% 증가했다. 재배 면적이 1.9%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위면적 10a당 생산량은 전년 대비 7.8% 증가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 영암군도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쌀농사가 잘 되었다 한다. 풍년가를 부를만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쌀 선물을 받았다. 너무 고마운 선물이다. 지난여름 이례적인 폭염 속에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음이 분명한 선물이 아닌가. 풍년가를 부르며 축제를 벌여야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늘도 전남도청 앞에는 쌀을 쌓아놓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은 야적한 벼는 5만 킬로그램으로 1톤 트럭 50여대 분량에 달한다고 밝혔다. 22일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농민시위가 열린다. 농민회는 지난 5년 동안 쌀값은 3.2%하락한 반면 생산비는 10%, 물가는 무려 17% 가까이 올랐다며 특히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대 인상안을 내놓은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으로 생산비 보장과 함께 기초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 도입을 촉구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우리 조상들에게 쌀은 목숨처럼 소중했다. 쌀이 있으면 모든 것을 살 수 있었고 재산의 많고 적음도 쌀이 척도였다. 그들은 또 쌀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신주단지에 쌀을 넣고 대청에 모신 것이나 단지를 매년 햅쌀로 채우고, 있던 쌀로는 밥을 짓되 식구끼리만 먹은 것도 그 안에 신의 복(福)이 있다고 여겨서 였다. 정초에 쌀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해산을 앞두고 산미(産米)를 준비했던 것 역시 쌀과 신과 복을 하나로 본 데서 비롯된 풍습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농업은 생명산업이면서 안보산업”이라며 고정직불금 100만 원 인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농촌은 여전히 공동화되고 있고 농민들의 어려움 또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이 어찌 쌀 뿐이겠느냐만 누렇게 물든 황금들판이 안타깝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로 정부와 야권이 충돌한 바 있다. 지난달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는 이동필 장관이 “현재의 가격도 쌀 생산비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다.”고 피력, 야당의원들이 반발하면서 국정감사가 중단됐다. 현재도 여전히 그대로다.
이러한 사안보다 더 큰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쌀 관세유예기간의 만료이다. 지난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와 체결한 쌀 관세유예가 내년 말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재 말썽이 되고 있는 쌀 직불금제의 도입에 직접적 원인이 됐던 쌀 관세유예 조치가 만료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당시 쌀 관세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쌀 의무수입물량으로 20만5000톤을 들여와야 했고 이후 매년 약 2만 톤씩 늘려 유예 기간이 만료되는 2014년에는 40만9000톤까지 수입하게 돼 있다. 정부는 내년 9월까지 쌀 관세화 유예의 지속 여부에 대한 방침을 WTO에 통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쌀에 대해 어떤 압박이 불어 닥칠지 모른다. 이미 불길한 선례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려면 생산을 계속 줄여나가야 하고 쌀 목표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그 돈으로 쌀이 아닌 다른 농작물을 지원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농가의 재배 품목이 다양해지면 쌀 생산 과잉 문제가 풀리고, 농가 소득도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 미봉책은 될 것이나 우리 농업과 농민이 진짜 살길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쌀은 대한민국 국민들과 우리 민족의 주식이다. 식량 자급자족 문제는 국가전략의 문제이고 민족 공동체 전략의 문제이다. 남한은 쌀이 남아돌고 있지만 휴전선 이북의 북한은 쌀이 부족하다. 농민들은 남아도는 쌀 문제 해결위해서 쌀이 부족한 북한에 지원하자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쌀이 부족한 북한에 쌀을 지원 하면 남한의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쌀 부족을 해결하며 향후 전략물자인 식량의 무기화 시대에 우리한민족이 식량자급 확보해 국제사회의 식량 무기화 압박을 일부 대처 할 수 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지역의 풍부한 인심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며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바란다. (crose@db.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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