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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祉浩
영상으로 불교강좌를 하는 우학스님이 설을 즈음해서 ‘인이락(忍而樂)’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고통을 참고 견디면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마음 공부하는데서 익히 듣는 말이지만, 정초에 마음다짐하는 자리에서는 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말이다.
이런 주제가 나올 때마다 내 삶을 돌이켜 보곤 하는데, 올 겨울에는 유독 영암에서의 시절이 떠오른다. 추웠지만 따뜻하게, 그리고 고달팠지만 아름답게만 남아있는 신덕정의 추억이 그렇다.
50여년 전 봄에, 군에서 제대를 하고 가을이 지나도록 따분한 시간을 보냈다. 할 일은 없고 돈도 없었다. 학교로 복직을 기다리는데 당국에서는 감감 소식이 없어 애를 태웠다. 가족의 안타까운 시선들이 더 신경 쓰이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 해가 저물어가는 유난히도 춥던 겨울날 드디어 발령이 났다.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신덕정에 있는 군서북초등학교였다. 뛸 듯이 깊었다. 그런데 정말 뛰다시피 걸어야 하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였다. 자전거 장만할 처지도 아니어서 영암읍에서 1시간 반이 넘게 걸어다녀야 했다. 새로운 고통이었다.
오산입구까지 용당 방면의 큰 길은 그땐 비포장이어서 차가 지나가면 길에 깔린 자갈이 튀고 흙먼지 때문에 길에서 잠시 비켜나 있어야 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솔밭사이로 작은 언덕빼기들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몇 구비를 돌아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후미진 길이었다. 신덕정 장사리 사람들의 나들이길이지만 움푹움푹 패이기 일쑤고 비가 오거나 눈이 녹으면 발이 빠지는 진창이 되었다.
겨울에는 찬 바람에 얼굴이 얼어붙고 여름에는 온 몸이 땀에 절어야 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당하는 시련이었지만,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고초라 생각했다.
시간에 늦을까봐 숨이 차게 뛰는 경우가 많았지만, 뛰는 순간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그래도 아이들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안 따라준다고 모질게 타박만 하는 교사의 속좁은 욕심에도, 아이들은 내 곁에 올망졸망 따라붙는 너그러운 천사들이었다. 이런 순박한 동심들의 기다림이 있기에 힘을 내곤 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내 젊은 날의 신덕정을 잊지 못한다. 2년3개월이란 별로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때의 시련은 내가 살아오는 긴 세월에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모든 게 호기심이었고 갈망의 대상이었다. 나를 항상 게으르지 않게 했고 ‘토인비의 청어’처럼 긴장을 잃지 않게 했다. 그들은 들과 바다, 하늘, 나무와 바위, 짐승과 새, 즉 자연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그 때의 고달픈 고난 속에서도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순간들은 지금 아름답게만 떠오른다. 마을 고샅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자식놈 잘 가르쳐 달라시며 날달걀 한 개라도 꼭 쥐어주시던 부모 마음, 논두렁길에서 스스럼없이 불러 앉히고는 따뜻한 못밥을 권하시던 농심, 해창 갯벌에서 아이들 어른들 어울려 바지락(맛) 캐던 낭만…. 이런 순간들은 어떤 고통도 충분히 여과가 되었고,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지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어디를 가던지 포장된 도로가 뻗어있고, 마을 안쪽까지도 자동차가 넘친다. 사람들도 변했다. 어렵고 귀찮은 것은 피하려고만 한다. 뭐든지 편하게 하려 한다. 이웃 간에 서로 ‘오며가며’의 정이 덜 한 것 같다. ‘우리’보다 ‘나’를 더 생각하기 때문일까.
신덕정을 떠나온 뒤로 한 번도 다시 찾아보지 못했다. 나의 무심 탓이었다. 신덕정도 물론 몰라보게 변했으리라. 지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가볼 수는 있겠지. 그러나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은 건, 옛날의 모진 시련과 고난 속에서 얻어 낸 즐거움이다. 지금의 편리함 속에서는 그 시절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던 진정한 희열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부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바세계’라 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셈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우리의 경제여건이 풍족해졌어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어딘가 비어있는 것 처럼 불안하다. 매일매일 쫓기듯 살아야 세상살이에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 한 마디로 고통이다.
사람은 결국 이런 고통의 세계를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은 차라리 즐겨라’, 어느 철인의 말이다. 좀 더 낫게 살고 싶어 애쓰는 고통, 수많은 병에 시달리는 고통, 경쟁사회에서 받는 온갖 스트레스…. 이런 고통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고 우학스님은 말한다. 고통 속에서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맛 본다면 그 사람은 정말 ‘잘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 옛날 신덕정에서의 삶이 고난이 아닌 행복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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