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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이 또 운다. 이불속에서 뭉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어둠에서 일어나 새벽을 맞이하라고, 세상을 밝히는 저 햇살이 보이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성 싶다.
수탉의 울음소리는 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한다. 시골에서 살 때, 닭이 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닭은 고개를 길게 늘이고 눈을 부릅뜨고 털을 곧추세우며 온 힘을 다해 운다. 저렇게 작은 몸에서 저토록 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가 나온다. 혼신의 힘을 다해 울기 때문이다. 수탉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시작한다. 세상 어느곳이건 수탉은 저렇게 주인을 배반하지 않고 어김없이 새벽을 알린다.

김 선생은 우체국에 가서 짐을 좀 부쳐버리고 천천히 따라 오겠다고 한다. 그동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느라 힘들었나 보다. 지금이라도 짐을 줄이겠다고 결정했다니 다행이다. 꼭 필요한 물건인 것 같지만 그것 없이도 걷는데 불편하지 않는 물건이 많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갈 것인가 짐을 줄여 가볍게 갈 것인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은 1㎞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각 지방 행정기관이 이 길에 대해 쏟는 정성에 비례해서 까미노에 대한 관리가 잘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같다. 마을 벽에 "종훈&루리는 사랑한다", "윤주야 파이팅" 등 한국어 낙서가 보인다. 나도 김사장이 우체국에서 짐을 보내고 혼자서 걸어오는 길이 힘들 성 싶어 "요한 형제님, 힘내세요!"라고 한 마디 써 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왔는데, 75세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일부러 영어를 배우지 않을까. 파리의 몽파르나르 역에서도 경험 했고, 벌써 여러 명의 프랑스 사람을 만났는데 의외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아까 만났던 스반이 길가에서 소변을 보고 있다.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알아서 눈치껏 저렇게 볼일을 보아야만 한다. 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방법 그대로 순례객들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길가 표지판에 누군가 덧 그림을 그려 놓았다.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낙서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풍경이다.

오늘의 목적지 벨로라도(Belorado)에 도착.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알베르게에 태극기를 포함한 만국기가 펄럭인다. 김선생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마켓을 보러 광장 부근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성당 뒤편 바위 산 곳곳에 굴이 뚫려있다. 전쟁 때 천연 요새로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보니 동굴 입구에 창문이 달려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전사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프랑스 점령군에 맞서 싸운 스페인 의병들의 활약을 기록한 비이다. 이 지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400여명의 의병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당나귀 한 마리가 막 도착한다. 등에 짐을 실었다. 당나귀를 끌고 온 마부는 벙거지를 썼다.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당나귀는 풀어서 마구간으로 옮기고, 마부는 숙소로 들어간다.
저 마부는 자기 마을에 돌아가서 할 말이 오죽이나 많을까. “촌놈 장에 갔다 오면 이웃까지 잠 못 들게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웃들에 들려줄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마을에서 서울 다녀온 사람을 빙 둘러싸고 신기한 얘기를 들을 때처럼, 동네 사람들이 마부를 둘러싸고 대처에서 보고 듣고 온 색다른 이야기를 밤 새워 들을 성싶다. 그나저나 이 나라에 아직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지가 있나보다. 머잖아 저런 풍경도 사라져 갈 것이다. 날이 저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