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수들의 비석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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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로에서

영암군수들의 비석을 찾습니다!

이영현 양달사현창사업회 사무국장
농협영암군지부 맞은편에 ‘동성건재’라는 가게가 있다. 바로 영암성(靈巖城) 동문(東門) 터의 일부로, 불과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문 앞 장터 입구에서 저 아래 장터까지의 거리를 ‘비석거리’라고 불렀다. 1911년 일제가 전국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기 위해 조사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영암군 편을 보면, 이 비석거리에는 20기(基)의 비석이 있었다. 관찰사 이서구를 비롯하여, 암행어사 어윤중과 심상학, 순찰사 이상황과 서상승, 도찰사 이헌진, 그리고 군수로는 1741년에 부임한 임진하부터 이양중, 이능권, 민치린, 서광훈, 이규안, 홍택주, 민창호, 이규대, 심의철, 남석용, 신홍균, 정원성, 김회수 등의 비석들이 위엄스럽게 늘어서 있었다.

이 비석거리를 지나 영암성 동문을 들어서면 관찰사와 중앙의 관리들이 묵어가던 위풍당당한 객사 건물이 보이고, 좌측에는 호남 제일루라고 소문난 대월루(對月樓)가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8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대월루 앞 연지(蓮池)에서는 아이들이 수양버들나무 주변을 맴돌다가 관리들이 한눈을 파는 틈에 연못에 들어가 연밥을 따서 도망가곤 했다.

1909년 2월 20월 일본 헌병의 실화(失火)로 객사와 대월루가 불타고 영암성당 터에 있던 영암군청이 1929년 5월 22일 객사 터로 옮겨온 이후에도 비석거리는 여전히 영암을 대표하는 거리였다. 그 앞을 오가는 행인들은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고, 문자깨나 아는 선비들은 오랫동안 비석들을 훑어보며 영암에서 머물다 간 관리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곤 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상인들이 영암장터를 확장할 때도 비석거리만은 고스란히 보존되었고, 집안이 가난하여 열무정과 무학당(武學堂)에서 공부하던 낭남학원(朗南學院) 아이들은 비석거리를 오가면서 남몰래 청운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해방 후 이 비석거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인파로 붐비는 장터 골목을 오갈 때면 비석들이 행인들의 발길을 가로막기 일쑤였고, 손수레나 자동차가 오가게 되면 사람들은 비석들 뒤쪽으로 도망치듯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하여 1959년 영암공원에 충혼탑을 세우기로 한 이시형(李時炯, 1957.10-1960.5 재임) 군수가 팔을 걷어붙였다. 일제가 세운 신명신사(神明神祀) 터에 6.25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충혼탑을 세우면서 장사꾼들의 민원 대상이던 비석들을 충혼탑 앞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나라에 목숨을 잃은 호국영령들과 일반 관리들의 송덕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여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하여 2021년 영암군에서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영암군 근·현대사」 361페이지를 보면 1978년까지 이 비석들은 충혼탑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사가 창간 45주년 기념 사업으로 ‘삼일유적보존’ 운동을 추진하면서 이 비석들은 다시 한번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83년 동아일보사에서 전국에서 10번째로 영암군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하였는데, 기념비를 세울 자리에 이 비석들이 버티고 있었다. 봉석호(奉錫鎬, 82.12-85.5 재임) 군수와 ‘영암군 삼일운동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수개월을 고민한 끝에 영암향교 앞으로 이 비석들을 이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영암향교지」 ‘영암향교연혁’을 보면 1983년 12월 12일 영암공원의 비석을 향교 경내로 옮겼다고 적혀 있다.

한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사진으로 보는 영암군 근·현대사」 속의 비석들과 현재 영암향교에 있는 비석들의 모양이 약간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1978년도 첫머리에 있었던 관찰사의 비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향교에 있는 조선시대 영암군수들 비석 7기 중 이양중과 김회수를 제외한 김계현, 이기남, 신희계, 이경면, 권창섭 군수의 비석은 원래 남문 주변에 있던 것들이었다.

필자가 며칠 전 듣기로는 1983년 12월 12일 이전할 당시 그 자리에 몰래 묻어 버렸다고 하는데, 설마 영암군에서 관찰사와 군수들의 비석을 함부로 매장해 버렸을까 싶다. 혹시 1959년 영암공원으로 이전할 때 이시형 군수 등이 장터 골목에 묻어 버린 것은 아닐까?

현재 우승희 군수의 공약사업으로 현충공원을 조성하면서, 영암공원 재정비 공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관찰사와 순찰사, 암행어사, 군수들의 비석은 우리 선조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세운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만일 영암공원이나 장터 골목 어딘가에 이들 비석이 묻혀 있다면 모두 발굴하여 후손들의 향토사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혹시 이들 비석의 행방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란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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