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남도교육감과의 간담회 개최까지 이뤄진 ‘영암읍 중.고교 통합’ 논의는 지난 2003년과 2012년 추진되었으나 무산된 이후, 2020년 영암지역 학부모들이 영암읍의 남녀 중.고교 통합 및 중학교 남녀 공학 추진을 건의하면서 다시 시작된 영암군의 오랜 숙원이다.
학부모들이 시작한 통합 논의였던 만큼 추진에 가속도가 붙어 곧바로 ‘영암교육경쟁력강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됐으며, 영암읍내 학교인 영암초교, 덕진초교, 영암중.고, 영암여중.고 등을 방문, 학교장 면담을 진행하며 통합이 필요하다는 학부모들의 절실한 의사를 전달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어수선한 와중에서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순식간에 1천여명이 넘는 학부모 등이 참여했고, 영암상록회관에서 영암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학교통합 주민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열정적인 움직임에 따라 당시 영암교육청의 자문기구인 영암교육참여위원회는 영암읍 중.고교 통합 추진을 위한 특별기구 구성을 결정했다.
하지만 참여위가 영암 중.고등학교 육성 방안, 즉 영암읍 중.고교 통합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동안 통합을 추진해온 학부모단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거론하는 등 영암지역사회의 고질 병폐인 ‘뒤늦은 발목잡기’가 또 벌어지면서 통합논의는 한동안 진척되지 못한 채 방치됐다. 게다가 당시 장석웅 교육감이 이끈 전남교육청의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기조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통합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023년 4월 참여위 산하 통합논의 기구인 ‘영암읍 중.고 교육력강화 분과위원회’가 ‘영암교육 대전환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면서다.
영암교육청은 이날 토론을 통해 논의된 영암지역 중.고교 교육력 강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제로 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 교육주체와 이해관계자 공청회를 실시하기로 했고, 영암지역 교육주체들을 대상으로 영암읍 소재 중.고교 통합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했다.
특히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영암지역 교육주체들은 영암읍 중.고교 통합에 대해 69.2%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통합 시도 때마다 막판 결론에 이르지 못해 무산되곤 했던 영암읍 중.고교 통합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 지역민 등 이른바 영암지역 교육주체들은 여전히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통합의 유형에 대한 조사에서 고등학교의 경우 ‘공립으로의 통합’이 67.6%, 중학교의 경우도 ‘공립으로의 통합’이 76.2%로 나타난 결과를 놓고 여론조사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영암여중.고가 강력한 이의제기를 하고 나섰다.
당초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기간의 응답률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사 기간을 연장한 것이 그 주된 이유였고, 영암교육의 현주소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 주체들의 의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론조사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통합논의에 있어 가장 핵심일 수밖에 없는 ‘통합의 방법’에 대한 여론조사가 신중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영암읍 중.고 교육력강화 분과위원회가 2023년 11월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남교육청이 두 학교와의 면담 등을 통해 학교 통폐합에 나서달라고 요청하며 그 역할을 마무리했으나, 그로부터 또 다시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껏 통합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1차 통합논의는 지난 2003년 6월 ‘학교통폐합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영암고와 영암여고를 방문해 그 취지를 설명하면서 시작돼 전 군민적인 관심을 끌었다.
같은 해 7월 군민 1천5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80%가 넘는 1천221명이 통합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기도 했고, 여세를 몰아 전남교육청과 전남교육위원회, 영암고와 영암여고 등을 방문해 잇따라 설명회를 열었다. 급기야 2004년 10월에는 군민회관에서 ‘영암 명문 중.고교 육성을 위한 학교통합 공청회’와 통합 촉구 결의대회 개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첫 학교통폐합 논의는 결론 없이 표류했다. 2005년 들어 영암고와 동문들이 사립인 영암여고로의 통폐합을 문제 삼아 통합반대결의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영암고발전추진위원회까지 창립하고 나섰다. 결국 학교통폐합추진위원회는 이해 7월 학교통합 추진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고, 진행하고 있던 2차 여론조사도 중단했다. 영암고와 영암여고는 각각 전남교육청에 남녀공학을 신청했으나 최종 불허통보를 받았다.
지난 2012년 추진되었던 두 번째 학교 통폐합 논의는 당시 영암 출신 장만채 교육감의 ‘거점고교 육성정책’과 맞물려 추진되었음에도 허망하게 무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5년 5월 영암고가 전남 거점고교 선정에서 제외된 것이다.
두 번째 논의 역시 통폐합만 이뤄지면 명문학교 육성을 위한 전폭적이고 획기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진전이 없었다. ‘영암지역 거점고교육성추진협의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광범위한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지역사회의 추동력도 얻지 못한 것이 좌초의 주된 이유였다.
■ 관심 끄는 ‘공공형 사립고’
영암읍 중고교 통폐합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영암형 공공형 사립고’는 이번 3차 통합논의의 산파역을 해온 우 군수가 생각해온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영암지역 학부모들이 영암읍의 남녀 중.고교 통합 및 중학교 남녀 공학 추진을 건의할 당시 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우 군수는 <영암군민신문>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다른 지역 및 영암의 과거 추진과정을 교훈삼아 최대한 짧은 시간에 충분한 공론화를 통해 학교통폐합을 전격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진행방향에 대해 “사립고.공립중, 공립고.사립중의 통폐합 방안과 현 상태를 유지하며 남녀공학을 추진하는 방안 등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각 방안마다 장단점이 있으나 지역사회에 어떤 방안이 유리할지 면밀하게 점검해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군수는 또 ‘사립고.공립중’ 통폐합 방안에 대해 “재정의 투명성, 유능한 교원 확보, 교원 선발 때 투명성 확보 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경우 입시지도와 관련해 사립고교의 장점을 살릴 수 있어 학생들의 입시 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학교통폐합 과정에서 공립고교가 통합된 사례가 없고, 사립학교 법정부담금이 매우 낮은 현실 등은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방안인 ‘공립고.사립중’ 통폐합 방안에 대해 우 군수는 “유능한 교원유치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 공모 교장제도 지속적 실시 등 입시지도에 안정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방안 마련 등이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국고 지원이나 전남교육청, 영암군 등의 지원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립재단이 고교를 포기하기 어려운 점 등은 과제”라고 분석했다.
우 군수가 이번에 영암읍 중.고교 통합의 최종적인 방식으로 거론한 ‘영암형 공공형 사립고’ 모델은 이들 두 가지 방안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그동안 사립고로의 통합사례가 없어 교육감의 의중이 관건이었으나 김 교육감이 주민의견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함에 따라 사립고로의 통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전제로 한 ‘공공형 사립고’ 모델이 가시화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립고로의 통합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은 재정의 투명성, 유능한 교원 확보, 교원 선발 때 투명성 확보 등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고교 통합 탄력 받나
영암읍 중.고교 통합논의는 가장 핵심인 방법론까지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됐고 진척이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영암군과 영암교육청, 전남교육청 등과 곧 구성될 가칭 ‘영암군 중.고교 통폐합 추진위원회’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함은 당연하다. 통합논의를 이어가면 또 다른 발목잡기 논란도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제는 불필요한 문제제기 등은 과감하게 배척할 필요도 있다.
영암여중.고 학교법인의 역할도 막중하다. 최종적으로 ‘영암형 공공형 사립고’ 모델로 영암읍 중.고교 통합이 이뤄진다면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립을 사립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전례를 남기는 일인 만큼 우려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소대책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영암지역 교육 주체들과 군민, 향우들 역시 이번 통합논의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여길 필요가 있다. 사소한 문제 제기 등은 절제해야 하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합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