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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게 하자”…시종농민회 등 조 회장 돕기 솔선
영암군농민회 조광백(54) 회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 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을 위해, 최근까지는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농민운동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온 그가 이제는 간경화를 이겨내기 위해, 결코 져서는 안 될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조 회장이 자신의 육신에 파고 든 병마를 안 것은 지난 2009년. 아는 이가 있어 서울대 병원에서 자세한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간경화였다. 왜 좀 더 빨리 병원을 찾지않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올 초에는 증세가 더욱 심해져 한국병원에 입원해 20여일동안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병을 너무 방치했다. 간을 이식 받지 않고서는 가망이 없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영암 시종농민회 박재택 회장은 “농민운동을 하다 보니 술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열악하기만 한 농촌현장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한다는 일 자체가 피를 말리는 것처럼 가슴 옥죄는 일”이었다며 발병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병마와 싸우느라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조 회장이지만 1980년대는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지자 친구들과 함께 직접 참가했다. 구속되거나 부상당해 유공자로 인정되는 등의 전력은 없지만 엄연히 그도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시민군의 한명이었다.
1980년대 초에는 민주헌정연구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그가 주도한 전남민주화추진협의회 영암지부 결성식에는 참석자들이 영암극장을 가득 메웠다. 민주연합청년동지회를 만드는 데는 그가 이끈 이 전민협 회원들이 가장 중요한 추동세력이었다.
박 회장은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귀띔한다. 80년대 중반 분가하면서 그런대로 넉넉한 형편이었던 부모님으로부터 5천여만원의 거금과 논 10여마지기를 물려받은 그였다. 하지만 모두 탕진했다. 어려운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동지들의 교통비며 식사대 등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충당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미소까지 화재로 소실되면서 그는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춤했던 그의 사회운동은 시종청년회에 농업분과를 두자는 제안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으로 이어진다. 2004년 시종농민회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이후 그는 면세유 투쟁, 무·배추 파동 등 굵직한 농민투쟁을 직접 이끌며 농민운동권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젠 간경화가 이런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때는 체념하기도 했다. 어려운 생활고 때문에 적게 잡아도 3천만원에서 5천만원이 넘게 드는 수술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야 겠다’는 집념이 더 강하다. 함께 농민운동을 하는 동지들의 격려도 계기지만 무엇보다 하나 뿐인 아들의 지극한 효성 때문이다.
내년 1월 초 제대하는 아들은 자신의 간을 아버지께 이식하겠다며 적극적 공여의사를 표시한 상태다. 이 때문에 내주 중 아주대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 가운데 적절한 병원을 골라 수술 준비에 들어간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문제는 수술비와 병원비다. 이곳저곳 격려와 성금이 답지하고 있지만 충분하지가 않다. 이 때문에 영암군농민회는 적극적이다.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다 병마를 얻었으니 이젠 농민들이 갚자는 것이다.
시종농민회 박재택 회장은 “투쟁 현장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인간적이며, 결정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그야말로 냉철하게 활동했던 조 회장이었다”면서 “그가 다시 올바른 사회를 위해,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다시 뛸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도움주실분/농협 356-0426-7401-53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 정석기
김명준 기자 gm119415@hanmail.net
2026.01.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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