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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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대통령 임기초반인 80년대 국민 97%의 지지를 받기도 했던 그가 연일 계속된 이집트 민중의 시위를 계기로 군부에 의해 축출된 것이다.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군참모총장으로 있던 1973년 10월 중동전쟁 때 초반 공습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1975년 4월 안와르 엘 사다트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됐다. 1981년 10월6일 사다트 암살을 계기로 대통령직에 취임한 무바라크는 1987년 선거에서 97% 지지로 2선, 1993년 선거에서 3선, 1999년 선거에서 4선돼 6년간의 임기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최근에는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계획이었다니 참으로 무서운 권력욕이다..
하지만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무바라크도 한데 뭉친 ‘국민의 힘’ 앞에서는 역시 무기력했다. 그 진원지는 1980년 5·18 때 도청 앞 광장이 연상되는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이곳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을 위한 유치원과 ‘KFC 병원’(KFC clinic), ‘희생자 추모벽’ 등이 설치된 명실 공히 이집트 민주화의 ‘성역’이었다고 한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을 축출시킨 반정부 시위물결은 이웃 이란과 예멘, 바레인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들 나라에 오랫동안 뿌리박혀 있던 제반문제들까지 한꺼번에 수면위로 올려 지고 있어 아랍권 국가 전체의 통치자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집트 시위는 처음에 실업자들이 촉발했다. 특히 청년실업과 도시빈곤이 극에 달해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닌 사회 양극화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실각이 이집트 대중이 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어질 것인가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권력은 민주주의와 결코 양존하기 어려운 군부(軍府)에 넘겨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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