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부활의 슬로시티(slow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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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부활의 슬로시티(slow city)

김명전

김명전
삼정KPMG그룹 부회장
성균관대학교 법학대학원 초빙교수
우리 사회는 1970년대 이후 고도 산업화의 길을 달려오면서 ‘빨리 빨리’라는 말로 상징화된 속도 중시의 문화에 떠밀려 왔다. 지금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의 영역에서는 속도가 성패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이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싹트고 있다. 최근,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슬로(slow)’를 새로운 트렌드로 하는 경영관리 기법과 사업영역이 부상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로 귀농인구가 늘어나는 것과 관광행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제주의 ‘올레길’ 관광과 같이 천천히 걸으며 자연에 동화되는 여행 패턴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관광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관광패턴은 몇 개의 핵심 관광 명소를 목표로 정하고 그것을 최대한 빨리 달성하는데 열심이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대한 빨리 돌아보고 사진을 찍어 둠으로써 목표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고 느끼는 여유는 없었다.
기업경영에서도 하나의 도전적인 시도가 있었다. 비록 한국 언론에서는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덴마크의 세계적 해운물류 기업인 마에르스크가 컨테이너선의 항해 속도를 시속 24-25노트(44-46㎞)에서 시속 12노트(22㎞)로 배 이상 느리게 운항해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따르면 운송업은 특성상 빠른 배송이라는 속도경쟁이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꾸로 항해속도를 낮춘 것이다. 그 결과는 연료비 30% 절감과 이산화탄소 30% 감축 등으로 나타나 경영 성과뿐만 아니라 환경보호에도 기여했다는 성공적인 평가로 나타났다.
이같이 경제분야에서 일어나는 ‘슬로 트렌드’ 배경에는 성장의 과실로 나타나는 부의 축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깔려 있다. 무엇을 위한 속도인가? ‘건강한 환경, 안정된 직장, 편안한 가정’이라는 행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제 목표의 성취에 사활을 거는 것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가치의 변화다. 이것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톱니바퀴처럼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취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속도경쟁에서 오는 압박과 상실감 해소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트렌드의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슬로 트렌드의 부상은 기업에 있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인 동시에 기존 경영관행에 변화를 요구하는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업 내부적으로 느림을 체화하고 이에 부응하여 조직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물론,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찌되었든,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가 한국의 ‘빨리빨리’ 성공신화를 롤모델로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느림과 여유를 강조하는 ‘천천히(SLOW)’가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당분간은 ‘느림의 미학’이 ‘속도의 경제’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변화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든 정부나 지자체든, 오늘의 현실, 그 너머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변화의 물결, ‘느림의 경쟁력’을 발견하는데 주목해야 한다.
최근 귀농인구가 늘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6-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상징되는 시대는 가난으로 부터의 탈출이 최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21세기, 소득 2만불 시대의 국민은 성장만이 지고의 선이 아니며, 행복을 보장하는 정책도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기기 시작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살림에서 도대체 성장의 과실은 누구의 몫이 되었는가 질문하고 있다. 그 답은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지키려는 ‘자아(自我) 찾기’로 나타나고 있다. 귀농행렬도 의미를 따지고 보면 ‘나’를 찾는 엑소더스(탈출)다.
슬로시티가 정착점이다. 그것은 바로 삶에 성찰이며 눈뜸이다. 하루에도 분초를 다투는 도시의 삶에서 1년을 단위로 사계절을 기다리는 여유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영암, 월출산의 정기가 넘치는 기(氣)의 고장 영암이 바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인 웰빙(well being)을 채워줄 가나안의 땅이다. 도시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도피처나 은퇴자의 피난처가 아니다. 진정으로 새롭게 자아를 실현하려는 꿈과 희망이 은은하게 흐르는 충만과 자신감 넘치는 도시를 생각한다. 혹여 실패한 사람도, 은퇴한 사람도 영암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와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된다. 누구나 참 삶을 찾을 수 있는 부활의 슬로씨티가 바로 영암의 미래다.
김명전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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