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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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천년고찰 도갑사

최영옥
문화관광해설사
도갑사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조계종인 사찰로써 월출산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큽니다.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도량으로 신라 말 헌강왕 6년 도선 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입니다.
조선시대 세종의 왕사였던 수미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원 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어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습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갑사 내에는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 상(보물 제1134호), 5층 석탑(보물 제1433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지만 그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 89호(11세기 초)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일부 옷 문양이나 4각형의 좌대는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손의 모양은 석가모니불 수인(手刃)이지만 미륵부처님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웅전 옆을 통해 계곡 길을 조금 올라 용화교(龍華僑)를 건너면 왼쪽으로 미륵전(彌勒殿)에 모셔져 있습니다. 돌계단을 오르면 원래 전각이 없이 돌부처님만 모셔져 있었지만 100여 년 전 보호 각이 세워져 있었고, 1996년에 새로 전각을 신축하였습니다.
월출산에서 내려오는 기운이 이 자리를 지나 도갑사 대웅전을 들이치는 형국이기 때문에 그를 누르기 위해 돌부처님을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풍수적으로 기운이 강한 곳이며, 기운이 강한 만큼 정성껏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방향으로 기운이 작용하여 많은 이들이 기도 성취를 얻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으로 이 세상에 출현해서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미래부처님입니다.
도갑사가 위치한 호남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으로써 미륵신앙이 발달했던 지역입니다. 미륵신앙은 죽은 이후에 미륵부처님의 세상인 용화세계(龍華世界)에 태어나고자 하는 미륵상생(彌勒上生)신앙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사바세계 중생의 곁으로 미륵부처님이 내려오셔서 용화세계를 건설한다는 미륵하생(彌勒下生)신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미륵하생 신앙은 사회변혁운동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불상 지대석 및 둘레석이 묻혀 드러나지 않았었는데 1996년에 미륵전을 보수할 때 법당 바닥을 낮춰 드러나도록 하였고, 불상을 훔쳐가려던 왜구들에 의해 좌대 일부가 파손되고 잘못 놓여 있던 것도 바로 맞추어 놓았습니다.
도갑사는 이제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선 국사의 재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 할 것입니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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