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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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이르는 길

이원형 본지 객설논설위원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1)
‘독수생정 불가불벌(毒樹生庭 不可不伐)’ 즉 몹쓸 나무가 뜰 안에 돋아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중국의 청량징관(淸凉澄觀)이 자기의 스승의 스승인 혜원(慧苑)을 이단으로 몰면서 쓴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철스님이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의 돈오점수를 비판하면서 이 말을 인용하였다.
도대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무엇이기에 스승의 스승을 비판하면서 독수란 신랄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몰록 깨치면 바로 부처(頓悟成佛)’라며 이론과 탐구를 초월한 깨침을 강조하는데, 이 깨침에 이르는 길을 두고서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원래 돈오점수는 불교의 교종의 일종인 전태종과 화엄종에서 중시하는 수양준칙이었다. 그 후 깊은 사색과 좌선만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선종이 달마조사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이후 5조 홍인화상의 두 제자인 신수의 북점(北漸)과 6조 혜능의 남돈(南頓)으로 나뉘어 중국에서의 돈점 논쟁이 시작 되었다. 6조 혜능에 의하면 불성은 마음속에 있으며, 마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스스로 깨닫고 성불 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선종의 5가7종이 나와 선종이 융성하게 되었다.
또한 돈점 논쟁은 티베트에서도 마하연과 까말라 실라의 ‘라싸의 종론’으로 전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를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스님이 1981년 선문정로를 출간하면서 800여 년간 우리나라의 수행의 전범이었던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를 비판하여 사계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이른바 돈점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지극히 난해한 문제기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종교적 관점이 아닌 학문적 관점에서는 깨달음을 실재하지 않는 유명론이란 주장도 있다. 하여간 깨달음이란 불교에서는 수행의 궁극의 도달점으로 수 만겁의 윤회에서 해방되어 성불 즉 부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은 유식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6식은 물론 제7식의 말라식을 넘어 제8식의 아뢰야식의 미세망념까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돈오돈수란 단박에 깨치는 것으로 여기서 돈수란 사족에 불과하며, 돈오점수란 깨친 후에도 계속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방법에 관한 돈수와 점수의 논쟁에 있어 깨달음이 수행의 궁극점이라면 필자처럼 범상한 식견으로도 깨친 후에도 수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수는 이론적으로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논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용수대사 이래 2천여 년 간 불교의 수행방법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돈오 즉 단박에 깨치는 인간이 얼마나 실재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연 실제 인간세상에서 깨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최상근기를 가진 극히 소수만이 돈오의 경지에 이를진데, 우리 대다수 중생들에게는 점수의 수행방법이 보다 적합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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