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53년에 조그마한 도시국가로 출발하여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통일제국을 건설한 로마는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에 이르러 광활한 영토를 한 명의 황제가 통치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첫째 아들에게는 그리스, 터키, 이집트, 시리아 지역의 동로마제국을, 둘째 아들에게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북아프리카 지역의 서로마 제국을 다스리게 하였다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사망한 AD395년에 통일로마제국은 동·서로마로 완전히 나누어지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은 분리 후 흉노족의 침입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불과 81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으나 동서 교역의 중심지에 위치한 동로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유럽 세계에 그리스·로마 문명을 전파하는 등 1,000년이 넘도록 강력한 국가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에도 한가지 근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온 셀주크튀르크의 위협이었다. 당시 셀주크튀르크는 이슬람교도들로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성지로 숭배하는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땅에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찾아오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로마제국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동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셀주크튀르크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당시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크리스트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셀주크튀르크와의 전쟁을 제안하였다. 이에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크리스트교의 성지를 이교도들에게 내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성지를 되찾아야 하고 혹시 전쟁에서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틀림없이 천국에서 보상받을 것이다”라면서 성지탈환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여 유럽 각지의 군주, 영주, 기사, 상인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이들의 전쟁 참여 명분은 이교도들로부터 크리스트교의 성지를 되찾겠다는 것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각각의 이해관계가 달랐다. 교황청은 동방에 크리스트교를 전파하고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교황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고 봉건영주들은 동방으로 진출하여 보다 더 넓은 영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고 기사들은 전쟁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쳐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였으며 상인들은 셀주크튀르크로부터 지중해 무역권을 빼앗아 돈을 벌어 보겠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성지탈환 1차 원정에 나선 십자군은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떠난 지 3년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지탈환을 눈앞에 두었으나 이슬람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어렵사리 예루살렘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에 지치고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린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성지탈환이라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이성을 잃고 재물을 약탈하고 이슬람 사원에 불을 지르고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넘기는 등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고 결국은 이들의 만행에 분노한 이슬람교도들의 결집을 불러와 예루살렘 성지를 다시 내주고 이후 7차례 원정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십자군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저질렀다.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전쟁 비용은 주로 당시 베네치아를 비롯한 도시국가 부자 상인들이 부담했는데 거듭되는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전쟁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 상황에 이르자 상인들이 십자군에게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티움제국을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아 돈을 갚으라고 부추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은 처음부터 성지탈환이라는 순수한 목적보다는 참여 주체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에 따라 시작된 전쟁으로 성지탈환은 뒷전이고 전리품 노획. 약탈 전쟁으로 타락하여 성지 회복은 실패하고 중세 상인들의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으로 전락,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중세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전쟁을 주도한 교황권이 실추되어 왕권 강화를 가져왔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은 전쟁으로 확보된 동방과의 무역로를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이는 도시국가들의 상공업 발달을 가져와 훗날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통으로 받들고 있는 그들의 조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중세에 참혹한 십자군 전쟁을 치렀고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극한 대치를 벌이는 등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같은 조상을 받들고 종교적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두 종파가 서로 다투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성경에 나오는 사랑과 용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정의란 종교적 철학적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들의 선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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