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교육 혁명
검색 입력폼
 
낭산로에서

기후 위기와 교육 혁명

영암향교 장의 김기중
창세기(Genesis) ‘노아의 방주’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세상이 타락하여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하느님은 결코 이를 좌시(坐視)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창세기, 6-11)”에서 ‘타락(墮落)’이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홍수로 정화시켰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징벌은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먼저 하느님의 사자(使者)들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도록 강조한다. 그리고 소돔 성읍 안에서 공정을 실천하는 이를 단 열 명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생각해서 그 도시를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성읍의 사내들이 밤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집 앞에서 벌인 나쁜 짓을 보고서는 아예 그들의 눈을 멀게 한 다음, 유황과 불로 도시 전체를 파멸시킨다. 결국 이 두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이 징벌들은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는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비롯됐다는 점,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방주를 만들거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들판을 가로질러 곧장 산으로 달려야 하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실천적 결단과 행동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글머리에 굳이 창세기를 인용한 이유는, ‘물’과 ‘불’로 상징되는 작금(昨今)의 기후 위기가 이 이야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위기가 확연히 전 지구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우와 폭염, 태풍과 폭설, 지진,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기후 위기 극복은 이제 일부 활동가나 단체들만의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지구촌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실천적 결단과 행동이어야 할 것이다. 환경과 생태 측면에서 강조되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 즉 일회용품 줄이기나 쓰레기 분리 수거 및 배출, 재활용 운동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전 세계 ‘확대재생산’의 거대한 쳇바퀴가 더이상 무분별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함께 중지(衆志)를 모아가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나 녹색성장 등의 정책이 역으로 자본 세력이나 특정 기업만의 무책임한 이윤추구의 도구로 이용된다면 이는 결코 기후 위기의 해법이 되지 못한다. 지난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 정부들에 의한 국제회의가 간단(間斷)없이 진행되어왔음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바로 이처럼 심각한 기후 위기를 초래한,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의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이로 인해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나아가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국내 사정만 따져볼 때, 기후 위기와 교육 위기는 혁명적인 대전환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굳이 인과(因果)를 따진다면 교육 위기가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교육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교육이 ‘홍익인간’의 숭고한 이념과 목적을 상실한 채 오로지 출세와 부의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전쟁과 분단을 겪어오면서, 가깝게는 1995년 김영삼 정부 ‘5.31 교육개혁’을 필두로 한 소위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가 교육 부문에 획기적으로 도입되면서 ‘입시경쟁교육’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돼온 숱한 교육정책들은 ‘대학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한정되었다. 그래서 매번 교육정책은 바뀌어왔지만 교육철학과 목적이 상실된 채 그저 변죽만 울려왔다. 아직도 변별력 유지를 위해 내신과 수능에서 9등급 상대평가제를 고집하는 한 입시경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선점하기 위한 사교육 경쟁 또한 지속될 것이다. 좀 더 언급하자면, 수능에서 9등급 상대평가 대상인 공통과목(영어는 절대평가)은 고1 때 배치되어 있어서 최소한 중학교부터 사교육에 내몰릴 것이며, 그러므로 자연스럽계 수능 상대평가에서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자사고나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한 중학교 사교육 열풍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경쟁교육의 결과는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 건설을 방해하거나 오히려 야금야금 파괴시킨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치열한 경쟁교육을 거쳐온 개인들은 부지불식중에 ‘남을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 배태되어 왔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와 책임 의식을 지니고자 해도 실천이 결여된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구두선’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교육 위기를 초래했을 것이다. 더욱이, 작년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학벌주의와 경쟁교육이라는 나쁜 씨앗의 폐해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일부 관료들이나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사법부 인사들에게서 조차 공적인 마인드나 책임의식의 부재를 똑똑히 목도하고 있는 우리는 이제 교육혁명의 필요성을 절감(切感)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한국정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최소한 해방 이후 고착되어온 학벌중시 풍조와 유·초·중·고 교육을 지배해올 정도로 대한민국 교육을 획일화시켜버린 상대평가 중심의 경쟁적 대입제도에 있다. 그러니 이제는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상대평가제를 과감히 청산하고 일정 수준까지 수학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치열한 경쟁 없이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거나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연마할 수 있는 ‘절대평가제’로의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는 6월 3일 훌륭한 일꾼을 뽑은 다음에는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해체, 대학무상화와 평준화, 수능자격고사화, 국·공립대 네트워크화와 사립대공영화, 지역연합대학 설립 등 산적한 교육혁명 과제에 관심을 갖고 그중에서 실현 가능한 부문부터 실천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키워드 : 기후 위기 | 교육혁명 과제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