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작가 “혼불 문학관”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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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로에서

최명희 작가 “혼불 문학관”을 다녀오다

전 완도군 부군수 이 진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혼불 문학관”을 다녀왔다.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책을 읽고 그 작품의 현장을 찾아 작가의 숨결을 느끼고 작품에 대한 소감 이야기와 토론을 벌이는 문학기행을 해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 문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최명희 작가 ”혼불“을 읽고 큰 울림을 받아 “혼불 문학관”을 찾게 되었다

“혼불문학관”은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의 조용하고 넓은 부지 위에 고풍스러운 한옥 건물로 단아하고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문학관 내에는 작가의 육필원고, 만년필, 잉크병, 집필 노트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품에 등장하는 관혼상제, 세시풍속 등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게 했다. 최명희 작가가 지인에게 보낸 단정한 글씨의 손편지는 작가의 자상하고 꼼꼼한 성품을 엿볼 수 있었고 소설의 주 배경지인 노봉마을에는 작품 속에 나오는 매안마을 종가, 노봉서원, 청호저수지, 근심바위, 늦바위고개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있어서 소설 속 이야기를 새삼 떠올리게 했다. 특히 소설에 등장하는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노선이 변경됨에 따라 역사가 철거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남원시에서 역사와 주변 시설들을 모두 사들여 옛 모습 그대로 보존, 관광 자원화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소설 “혼불”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데 이를 혼불이라 말한다. 옛날에 집에서 장례를 치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집에서 혼불이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 혼불이 빠져나가면 하루나 이틀 후에 그 집은 초상을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최명희 작가는 그의 강연록인 “나의 혼, 나의 문학”에서 혼불은 정신의 불, 목숨의 불, 감성의 불,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하는 정령의 불이라고 했는데 소설 “혼불”을 읽어보니 작가가 자신의 혼불을 태우며 혼신의 집념으로 작품을 저술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명희 작가는 1947년 전주에서 출생했는데 작가의 부친 최성무는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던 지식인이었고 모친 허묘순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서 살았다. 노봉마을은 삭녕최씨의 500년 세거지(世居地)로서 최명희 작가는 전주에서 생활했지만, 부모님의 고향인 노봉마을을 자주 드나들면서 “혼불” 작품의 소재들을 발굴하고 구상했다고 한다.

소설 “혼불”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당시의 풍속사를 수려한 문체와 서정성으로 나타낸 대하소설로 남원지방의 반가 매안이씨 문중의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면서 살아가는 거멍굴 사람들의 강인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특히나 소설 “혼불”은 단순한 스토리의 전개가 아니라 당시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의 풍속과 문화사를 철저하게 고증하고 생생하게 복원시켰고 소설 속 어휘들을 하나하나 직접 취재를 하고 사전을 찾아가며 발굴해냄으로써 소설의 경지를 넘어 종합예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집필 과정의 고통스러운 어려움을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았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작가는 혼을 불살라 가면서 소설 혼불의 집필에 매진했지만, 불행하게도 집필 도중 난소암으로 투병하다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1998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작고하게 됨으로써 한국 문학계의 큰 별이 떨어지고 소설 “혼불”은 5부 10권에서 중단되어 미완의 작품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최명희 작가는 죽음을 앞두고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고 말했는데 투병 중에도 펜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작품을 써 내려간 그의 작가 정신 그 자체가 바로 혼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꽃향기는 며칠이면 향기를 잃게 되지만 문학이 피워내는 향기는 사람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감동으로 남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디든지 여행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대하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에는 문학관이 세워져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광복 이후 휴전협정까지 격동의 시기에 좌우 이념 갈등을 그린 조정래 작가 “태백산맥 문학관”은 소설의 주 무대인 보성군 벌교읍에 자리하고 있고, 일제강점기 40여 년간 민초들의 수난과 항쟁을 그린 “아리랑 문학관”은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앞에 세워져 있다. 경남 하동군 안악면 평사리에는 구한말부터 해방까지 격변기에 몰락한 양반·지주 가문과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박경리 작가 “토지 문학관”이 있다. 또 우리 지역과 이웃한 영산포에는 영산강 인근 새끼네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 속에서 땅을 일구고 자연의 재난과 지주들의 착취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그린 문순태 작가 “타오르는 강 문학관”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학관을 두루 돌아보고 많은 감동을 받으면서도 우리 영암지역은 왜 대하소설 작가가 배출되지 못하고 소설의 주 무대로도 등장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훌륭한 작가가 배출되고 소설의 주 무대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어야겠지만 지역의 문학적 토양도 중요하다 생각하면서 많은 이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키워드 : 최명희 작가 | 혼불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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