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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맹률 제로’에의 도전
왕인문해학교는 영암군이 2007년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전남도교육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김일태 군수가 민선 4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영암군을 ‘글을 모르는 65세 이상 주민의 비율(비문해율)’이 제로인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이 그 토대였다.
왕인문해학교가 시작되자 주변에서는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문맹이기는 하지만 큰 불편 없이 살아왔던 어르신들을 한데 모으기도 어려울뿐더러 동기부여자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제1기 운영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농한기를 이용해 일주일에 3회, 하루 2시간씩 한글과 수학의 기본셈, 학습놀이와 그림 그리기, 백일장 대회 등 다양한 교육방법을 통해 교육을 받아 온 266명의 어르신들 전원이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첫 수료생 배출에 따른 파급효과 또한 엄청났다. 문맹이기는 하나 그리 창피한 일로 여기지는 않았던 어르신들이 이웃동네 왕인문해학교 수료생들이 직접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고 신문을 읽는 모습에 하나둘씩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 치밀한 준비-‘문해교육사’ 양성
왕인문해학교가 첫 운영부터 성공을 거둔 비결은 김 군수의 의지만큼 치밀한 사전준비에 있다. 문해학교 운영을 위해 군은 주민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 정책적 뒷받침 방안은 무엇인지 등 기초수요조사부터 지도자 양성, 학습 기자재 지원, 정책 지원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실례로 영암군의 특성상 농촌지역이 대부분이고, 더구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군은 이런 문제를 감안해 교육장소를 마을별로 정했다. 또 여러 곳에서 실시될 문해교육을 맡을 지도자 양성에도 나섰다.
특히 문해교육을 위해 (사)한국문해교육협회에 의뢰해 퇴직교육자와 퇴직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문해교육지도사 양성과정’을 개설했다. 그 결과 2008년 문해교육지도사 양성과정을 수료한 52명의 문해교육지도사가 12개 학습장(마을)에 배치되어 첫해 266명의 어르신들에게 수료의 기쁨을 안겼다.
■ 신청자 쇄도, 여름학기도 개설
제2기(2008년11월∼2009년3월) 왕인문해학교는 학습장과 입학생이 제1기(2008년1월∼4월) 때보다 3배로 늘었다. 1기 수강생 중 한 번 더 교육 받겠다는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은데다 입소문이 나면서 신규참여자들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군은 각 읍면을 통해 참여자를 모집해 1기 때의 3배인 34개 교실에 753명이 입학한 가운데 제2기 왕인문해학교를 열었다.
어르신들의 학습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곁들였다. 문해학교에 참여한 어르신들에게 초등학교를 실제로 등교하는 체험행사를 실시했다. 또 자체 백일장대회를 통해 우수작품을 선정해 시상했다. 그 결과 입학생 가운데 667명의 어르신들이 수료증을 받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제3기 왕인문해학교(2009년11월∼2010년3월) 역시 61개 학습장에서 1천98명이 수료증을 받는 성과를 거두자 군은 곧바로 ‘여름학기’까지 개설했다.
김 군수는 “농번기이고 무더위가 심한 때라 제외했던 시기인데 각 마을에서 개설해달라는 건의가 이어졌고, 어르신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면서 “비록 소수이지만 배우려는 열망을 꺾지 않기 위해 여름학기 개설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군수의 의지에 따라 처음 개설된 2010년 여름학기(2010년5월∼8월)에는 5개 학습장에서 83명이 수료한 것을 비롯해 2011년 여름학기에는 18개 학습장에서 291명, 2012년 여름학기에는 25개 학습장에서 347명이 수료했다.
■ 감동의 눈물바다 된 수료식장
지난 4월26일 오후 제6기 왕인문해학교 수료식이 열린 군청 왕인실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김 군수와 김연일 의장 등을 비롯한 공직자들과 문해교육지도사들은 이날 854명의 수료생을 배출함으로써 지금까지 무려 5천712명의 수료생을 배출해낸데 따른 뿌듯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특히 수료생들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백일장에서 글쓰기 으뜸상을 수상한 시종면 회정교실 김춘자 어르신은 서툰 글씨체이긴 하지만 또박또박 써내려간 ‘동생에게 보내는 글’을 낭독, 수료식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김 군수는 이날 수료식 인사말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움의 즐거움만큼 값진 것은 없다”며 “비록 늦은 나이지만 배움의 기쁨을 알고 그 즐거움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료의 영예를 차지한 어르신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격려했다.
한편 영암군의 왕인문해학교는 인근 지자체 뿐 아니라 타 시·군 담당부서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등 영암의 독특한 트렌드이자 평생학습의 전국적인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김 군수는 “처음 시작 당시 주위의 여론은 단발성 정책으로 끝날 것이라는 등 우려와 걱정이 많았지만 어르신들에게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배움의 욕구를 알려드리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으며, 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과 정책이 있었기에 지금은 왕인문해학교가 영암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면서 “배우시겠다는 어르신들이 있는 한 왕인문해학교 운영을 계속해 전국 최초 문맹률 제로 지자체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영암지역 비문해자는 7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