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 초대석 #1 - ‘가요계의 영혼’ 김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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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월출 초대석 #1 - ‘가요계의 영혼’ 김지평

'월출초대석'은 영암 출신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기획 코너다. 각자의 삶과 작업을 통해 고향과 맺어온 인연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역의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첫 회의 주인공은 대중가요의 변화를 한 세대 이상 이끌어온 김지평 작사가다. 그는 수많은 히트곡의 뒤에서 시대의 감정과 사람들의 삶을 노랫말로 기록해온 예술가이자, 월출산 아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여전히 가슴 깊이 간직한 영암사람이다. 김지평 작사가의 작품에는 고향의 풍경과 정서, 그리고 잊히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레 스며 있다. 이번 기획은 그의 작사 인생을 되짚는 동시에, 영암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그의 언어와 감성의 근원이 되었는지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註>

[숨어우는 바람소리 – 사라진 영암천 갈대밭]
‘숨어우는 바람소리’는 ‘인생은 미완성’과 함께 선생이 최애곡으로 뽑은 곡이다.

‘이정옥’이란 가수가 불러 1993년 제7회 MBC 신인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곡으로 김지평 선생이 고향 마을 앞 바닷물이 들던 시절의 드넓은 영암천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곡이다. 최근 ‘전유진’이란 가수가 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새롭게 해석하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잊혔던 선생의 주옥같은 노랫말로 다시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창창히 흐르던 영산강 물길은 식량 증산이 중요했던 시절 영암과 목포를 잇는 영산강 하구언으로 막혔다. 영암 뻘밭의 대표 먹거리였던 맛조개, 낙지, 민물장어, 짱뚱어, 멍 등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뻘밭 사이 다양한 영양분을 품고 있던 풍성했던 갈대밭은 이제 흔적으로만 남아 그리움과 애잔함으로 남는다. 덕진 다리를 끼고 흐르는 영암천에 여전히 달은 지고 있지만 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선생이 추억하던 숨어 우는 바람 소리는 “길 잃은 사슴처럼” 쓸쓸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숨어우는 바람소리
(작사/김지평 작곡/김민우 노래/이정옥 1993년 발표)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 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

[뚜야의 편지 – 영산강은 알고 있다]
도포면 해창은 목포로 향하는 화물선과 여객선이 운행되었던 포구였다.

해창(海倉)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연안 지역에 있던 세곡이나 물류를 보관하는 창고를 가진 포구를 의미하는데, 바닷물이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곳에 해창이란 지명이 많은 이유이다. 도포 해창도 그러한 곳에 자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에 막혀 바다로 향하던 월출산에서 시작된 영암천 물길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지만, 장구한 세월을 흐른 영산강은 알고 있다.
영암읍을 중심으로 영암 동부권에 살던 사람들은 해창 나루터에서 ‘영암호(號)’를 타고 목포를 왕래하였다.

목포 부두에 내리면 작은 선술집이었던 ‘뚜우집’을 만날 수 있었다고 김지평 선생은 기억한다.

‘뚜우’는 ‘뚜우~ 뚜우~’하는 뱃고동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 그 집의 작은 소녀가 알려줬다. 배를 타고 영산강 강줄기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었던 ‘뚜우집’의 인연을 추억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김유정이란 가수가 불러 1974년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이다. 선생이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하여 작곡 데뷔 음반의 타이틀곡이란 의미가 있다.

뚜야의 편지
(작사/김지평 작곡/김지평 노래/김유정 1974년 발표)

낙엽을 모아서
불을 질렀네
뚜야의 편지도 같이 태웠네
옥같은 그 사연
재가 될 적에
돌같은 이 마음 눈물되었네
아빠가 왜 우냐고
물었을 때
낙엽타는 연기가 맵다고 했네
낙엽을 불질러
연기 태울 때
뚜야의 얼굴이 앞을 가렸네

[어린 고향 – 탯자리 영암]
지난 10월 말 선생의 영암 방문은 영암군에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기증제안 의견서’를 교환하기 위함이었다. 이정훈 영암문화원장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 결실을 보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영암군청을 방문하여 우승희 영암군수와 ‘의견서’를 교환하였다. 선생은 탯자리 영암을 위해 자신이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는 수천 장의 LP판을 포함해 한국 가요사에 있어 귀한 자료들을 영암군에 기증할 예정이다. 영암군은 이에 화답하여 이 자료들을 보관할 장소를 물색할 계획인데,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선생의 고향사랑의 증표가 될 소장품 기증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선생과 짧은 인터뷰 동안 가장 크게 울렸던 한 단어는 ‘탯자리’이다. 그는 늘 월출산을 바라보며 영산강의 지류인 영암천을 거닐던 어린 시절을 그리며 살아왔다. 소설가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 탯자리에 대해 이런 표현을 남겼다. “아배. 사람은 산에 지대서 살어야고, 산에서 얻어먹고, 산으 품으로 돌아가는 거인디요. 산이 우리 어머이 뱃속이그던요. 산은, 하늘으 별자리가 땅에 떨어져서 된 거이라데요. 그렁게 산으 탯자리는 하늘 아닝교? 우리 사람은 산이 탯자리고요.” 소설 ‘혼불’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남원 땅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라 지리산은 그 지역의 탯자리이다. 월출산과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 땅이 고향인 선생의 탯자리는 산도 있고, 강물이 흐르는 강변도 있다. 선생이 쓰신 가사 중에 나오는 월출산, 바닷가 모래밭, 갈대밭 등은 바로 선생의 탯자리이다.

어린 고향
(작사/김지평 작곡/이호준 노래/베베 1993년 발표)

팽나무에는 까치가 살고 소나무에는 학이 쉬던 곳
지붕 위에는 호박 영글고 뒤뜰에는 감이 익었지
월출산 고사리 피면 산나물 캐고
철쭉꽃 머리에 꽂고 다람쥐 따라
뛰고 달리고 뒹굴던 친구들
지금 나처럼 보고파할까
고향생각 눈물 고이네

자운영 밭에 병아리 놀고 솔밭에는 꿩이 날던 곳
예쁜 처녀들 길쌈 잘하고 총각들은 등짐 잘졌지
회문리 물방아 돌면 여름이 가고
풍년뜰 두레굿치면 가을 또 겨울
순이 갑순이 돌이 차돌이
지금 만나면 몰라보겠지
고향생각 눈물이 나네



[김지평 노래비]
현재 영암에서 이정훈 영암문화원장을 중심으로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 평생 고향 영암을 그리며 노래한 김지평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김지평 영암 노래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그의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월 3일 영암문화원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여 향후 진행될 사안과 사업비 마련을 위한 세부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데, 군민 기부 및 지역 단체 협찬을 원칙으로 추진하고 있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노래비를 세울 위치에 대해 몇 군데 안을 가지고 의논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모래밭과 갈대숲이 있던 영암천변도 후보지 중 하나인데, 바닷물이 덕진다리 위까지 드나들던 김지평 선생의 어린 시절 추억 속 모래밭과 갈대밭은 ‘당신의 마음’, ‘숨어우는 바람소리’ 등의 가사를 쓰게 된 시적인 뮤즈를 제공한 장소이기에 의의가 더 클 것이다. 영암군민뿐만 아니라 김지평 선생의 서정적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 장소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영암군민의 자부심이 더 고취될 수 있도록 각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조정현 집필위원


글쓴이 조정현은 영암사람으로 현재 영암군민신문의 ‘낭산로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영암군지』, 2023년 『일제강점기 영암군 현황 및 독립운동사』, 그리고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영암문화원에서 추진한 『영암인물사』 발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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