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차 한잔 하자"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참 귀하고도 정겨운데 기약 없이 만날 때마다 그 말 다시 합니다. 세월을 둘둘 감고 바삐 살다가 청춘을 휘휘 돌아 여유로워질 때 그때는 내 맘과 내 몸이 허락하지 않을지도 몰라. 오늘 단박에 술 한잔 할까요? 박춘임 '문학춘추' 시로 등단(2000년) 전남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
영암군민신문697호2022.02.18 13:25샛노란 꽃이 피면 연인들의 밀어를 속삭이는 돌담길이 고즈넉하다 골목길 밭두렁 산기슭 골짜기 눈길 닿는 곳마다 주렁주렁 루비 닮아 강렬하면서도 애잔하다 빨강 보석이 우수수 우박이 되어 떨어지면 달콤할 것 같은데 시고 떫어… 늦가을 산수유 찬란한 햇빛 받아 빨강색 전구되어 성탄 트리가 된다 강종림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96호2022.02.11 14:45가다가 뒤돌아보고 가다가 쉬어도 보고 힘겨운 날의 세상 살기를 산에서 배운다 예전부터 어른이었던 늙은 나무가 이적지 세월을 견디고 있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돌들도 잊혀진 풀들도 제자리가 있다. 감춰진 것들은 멀어져야 온전히 뵈는 법 외딴 바위에 앉아 세상을 보니 산자락 끝에서 알몸을 드러낸 마을도 한숨을 쉰다 삶이란 외로운 것들끼리 보듬는 일 홍시 같은 해가 또옥 떨어지기 전 사람의 세상을 받아들이러 내려선...
영암군민신문695호2022.01.28 14:39티끌 한 점도 허용하지 못한 당신의 몸은 정절이 배어있습니다 단단하게 굳어진 당신의 마음 속으로 그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엄숙한 당신의 모습에서 지조가 묻어나고 절개가 그림자로 따라 다닙니다 그런 당신에게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많은 시간들을 비바람에 씻은 혼을 담아온 주인이십니다 청초하고 풋풋한 예술과 같은 사랑의 향기를 품어내는 당신은 향기이십니다. 신순복 조...
영암군민신문694호2022.01.21 13:54가위 바위 보 곁눈질을 휠긋하며 이겼는지 졌는지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며 너와 나는 한편이 되었지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 긴 네모 칸을 그려 놓고 봉 개 아 씨 돌차기를 하면서 가냘픈 목소리 꼬막 만한 손으로 던지고 차고 세월이 어떻게 실어 왔는지 검은 머리 흰 머리 목주름 달고 그때 그 시절 너를 그리워 하네 박선옥 영암문인협회 사무국장
영암군민신문693호2022.01.14 11:52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을 볼 때면 입관식 때 보았던 어머니의 입술이 떠오른다 평생을 자식들 다독이느라 연분홍으로 칠할 새 없었던 세월,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진해진 입술의 채도에 울컥 목이 메었었다 아직 약이 덜 된 세월 탓일까 이제 막 바닥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을 볼 때면 그 속에서 되살아오는 어머니 생각으로 꽃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내 발걸음은 자꾸만 그곳을 맴돈다 봉성희 영암문인협회 회원 ...
영암군민신문692호2022.01.07 11:49좋은아침입니다 도연! 그래요, 아침이네요 아침, 고도연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91호2021.12.31 14:12서릿발 하얗게 선 이른 아침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위에 납작 엎드린 고양이 한 마리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오가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아주머니가 지나가고 할아버지가 보고 아이들이 쳐다봐도 고운 털은 그냥 그대로 엊그제 담장에 요염하게 앉아서 메주 만드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길고양이 한 마리 차디찬 아스팔트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 황금빛 고운 털에 먼지 묻을까 닦고 핥고...
영암군민신문689호2021.12.17 13:50없던 꽃가지 하나 올해 새로 피었다 동백의 저 높은 쪽 붉은색 꽃 핀 것을 보니 오래 묵은 봄 속에 출혈 있는 것 확실하다 나뭇가지들 모두 내시경 호스 같다 구역질하는 듯 흔들거리는 구부러지고 휘어진 가지 사이 화농처럼 맺혀 있는 꽃봉오리들 나뭇가지를 자르고 보던 그 속이 헛것이었다 단지 죽은 나무의 속을 본 것이었다 올봄 속상한 동백의 속을 꽃가지 하나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물끄러미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내시경 화면 한겨울을 이겨 ...
영암군민신문687호2021.12.03 14:31수탉이 새벽을 알리기도 전 깜깜한 방안을 불을 켜 놓은 듯 사뿐거린 걸음으로 밖을 나선다 밤새 풀벌레들 노래하다 늦잠에 빠진 시간 들 고양이 발걸음도 멎은 지 오래인데 구순의 하동댁은 새벽별을 앞세우고 교회로 간다 미명이 밝아올 쯤에야 딱, 딱, 딱 지팡이의 둔탁한 소리 집 앞에 도착했음을 짐작하는데 들어오는 기척이 없다 텃밭의 채소에게 안부를 살피느라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 물주는 소리에 가을배추가 야무지게 자라고 있겠다 ...
영암군민신문686호2021.11.26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