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없는 세상에 겨자씨 하나도 거저 주고받는 것이 아니기에 젊음의 열정과 에너지로 오름으로 채우고 모음으로 채웠건만 늙을수록 충족되지 않는 슬픈 욕심을 어쩌랴. 몸 안에 든 똥을 비우는 데에도 힘이 필요하듯 내 것으로 품기 위하여 힘들었다면 온전히 비우는 일 또한 힘이 필요한 것이어서 신앙보다 더 강한 것이 비워내는 힘이더라. 박춘임 '문학춘추' 시로 등단(2000년) 전남시문학상...
영암군민신문707호2022.04.29 14:14저수지 제방 둑길 하얀 꽃송이 피어 있었다 어릴 적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머리 맞대고 네잎클로버 찾다 못 찾고 꽃반지 만들어 손가락에 묶어주고 누구 손이 고운지 맞대보던 친구 지금쯤 어딘가에서 꽃반지 맹글어 보면서 손가락에 세월이 흘러간 흔적만 있고 마음속 꽃반지만 남아있다 김정심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706호2022.04.22 14:29새싹 오르고 따스한 봄날 버려진 화분들 세파에 시달려 진딧물 피부병에 울고 있다 안쓰러움에 씻어주고 약 바르고 주인 없소 죽일 수는 없지 버리긴 아까워 아흔아홉 어머님이 밀고 난 끌고 와 포근히 안아준다. 강종림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705호2022.04.15 14:10어둔 밤 쇠 녹이다가 불꽃을 생각한다 단단한 것이 가장 눈부시게 빛날 수 있는 것이사 정한 이치지만 화단에 떨어진 빛나는 꽃의 흔적처럼 어떻게 떨어지는 불꽃일까 어둔 밤 쇠 녹이다가 천이고 만이고 다시 돌아오고 있을 빛나는 불꽃들을 생각한다. 주봉심 '현대문예' 시부문 신인상 당선 영암문인협회 부회장 시집 '꽃을 바라보며'
영암군민신문704호2022.04.08 14:52마당에는 언제나 서너 개의 빗자루가 세워져 있었어요 동이 트면 우리 집에서는 바람이 가위를 들고 구름을 자르는 것이 보였어요 그리고 환하게 동쪽하늘이 열렸고 오색 닭들이 반드시 깨어지고 말 지구를 쑥 낳았어요 빗자루 중에서는 이따금 잎이 돋고 꽃이 피는 것도 있었어요 열두 달 필요한 달은 돌담이나 지붕이 키웠지요 밤이면 언니는 샛강에 목욕을 가고 담은 밤마다 길이가 늘어나고 또 어떤 담은 밝은 귀를 가졌지만 우리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지요 ...
영암군민신문703호2022.04.01 13:31티비 화면 가득 칠순은 족히 넘었음직한 노부부가 마당가득 붉은 오미자를 널어놓고 검부러기를 골라 낸다 한 켠에서 키질을 하는 안노인이 다 늙어 티비에 나오는 것이 마냥 수줍은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채우며 "평생 오미자만 키질하다 이라고 늙어브럿오." 한다 안노인이 키를 높이 칠 때 마다 붉은 오미자 열매가 힘껏 올라 파란 하늘을 만나고 와 다시 키 위로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그네를 탈 때처럼 아찔한 기분이다 서로 남남...
영암군민신문702호2022.03.25 11:52남자의 혀는 우화하지 못해 몸속에서 굵은 가시가 자랐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허기진 배를 움켜쥘 때마다 하나 둘 졸업한 동생들 말간 소주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문풍지 사이로 바람이 눅눅한 시간의 기척을 살핀다 골목을 휘감은 말들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청춘을 다 바친 뼈에서 가루 꽃이 필 때 엄지손가락을 집어 삼켰던 기계가 비릿한 향기를 토해낸다 어제라는 단단한 뿌리가 근육에 박힌 채 허리를 펴며 땀 닦는 햇살이 조곤하게 ...
영암군민신문701호2022.03.18 11:24별들이 하나, 둘 빛을 잃어 가면 개미의 하루는 기지개를 켠다. 새벽을 열어가며 무거운 발길 총총걸음으로 일터로 나서고 비지땀 뻘뻘 흘리며 어영차 어영차 힘차게 출발한다 내가 만든 여왕을 위해 머리박고 일만 찾아 헉헉 숨 넘어가는 소리 귓전에 울리고 어깨를 누르는 힘겨운 무게 버티고 버티며 부산을 떨어본다 삶의 무게에 눌려 버티기 힘든 어깨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적응하며 흐르는 시간 속에 하루 해는 저...
영암군민신문700호2022.03.11 12:12갈바람 나부끼는 은빛노래 향연처럼 뭉게구름 너울너울 술래잡이하는 꽃게 가족 발자국따라 정겨움에 덩실 어깨춤이 되네 꿈꾸는 소녀의 외로움 달래는 기나긴 이야기보따리 세로 누워 도란거리듯 백만년 지녀온 지평선 갈대의 꿈 사각사각 서글픔으로 녹아내리네 이미나 2012년 '현대문예' 시 부문 등단 현 서영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 해돋이시문학회 회원
영암군민신문699호2022.03.04 14:18호호 불며 껍질을 까먹는 갓 구워낸 검댕이가 묻어 있는 군고구마, 톡톡 영근 밤알, 핏빛으로 물든 수수를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까맣게 묻은 입 사이로 피어나던 웃음꽃처럼 향기롭고 순수했던 고우시던 어머니를 사르르 초콜릿 맛은 아니어도 있는 그대로 포장하지 않은 노릇노릇한 맛을 따끈따끈하게 내주시던 어머니 까맣게 구운 군고구마처럼 뜨겁고 포근했던 정갈한 어머니가 그립다 오금희 영암...
영암군민신문698호2022.02.25 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