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에서 우로 시계추 반동에 의해 몸집을 부풀리는 시간 오후는 두 번의 신호를 거쳐 숲길로 간다 달리는 차들이 서로 눈높이를 맞춘다 호박꽃, 상사화, 고양이, 바람, 내 시선 모두 한 통속 풍경이 제 각을 벗어나 스쳐 지나간 자리, 늘 소음이 절반이다 환절에 떨어진 잎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저만치 구부러져 흐르는 곡선과 함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정속 주행을 하는 풍경 고만고만하게, 오후의 속도만큼, 되돌아갈 ...
영암군민신문748호2023.03.03 11:47일체유심조 말 한마디에 굳어있던 마음이 풀리고 아름다운 곳으로 문이 활짝 세상은 마음먹기 달렸다 물질로만 남을 도우는게 아니라 살리는 말 한마디 절망에서 건저내고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세상살이 너그럽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힘의 원천 행복으로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고 온기충전 더불어 함께 나누며 가는 길이다. 신순복 조선대 사회교육원 문예창...
영암군민신문747호2023.02.24 11:48이른 새벽, 머리맡에 둔 전화기에서 굵고 짧은 음이 울린다 군복무 마친 후 서울로 아르바이트 떠난 둘째 아들의 존재음이다 국밥 한 그릇과 소주병 그리고 술잔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왔다 녹슬고 짓무른 세상과 이르게 마주선 아들의 마음이 읽히는 사진이다 '어서 먹고 들어가 쉬렴'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새벽 찬 공기와 허기를 달랬을 국밥그릇과 술잔에서 아들이 느꼈을 세상의 무게가...
영암군민신문746호2023.02.17 13:34보고 싶다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소리에서 머물면 사랑도 그리움도 아니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가슴이 아프거나 그립다고 말해 놓고 그리워서 눈물이 흘러 가슴에서 간절한 울림이 될 때 비로소 가을처럼 서로에게 물들고 싶은 절실한 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박춘임 '문학춘추' 시로 등단(2000년) 전남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나이테를 그으며' 등 ...
영암군민신문745호2023.02.10 13:45월출산이 다가와 눈앞에 다가서면 비가 올 거라고 하시던 은산댁 굽은 허리 주룽 막대기 세상 무거운 짐 다 지고 한발 한발 발걸음 옮기며 두 개 남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세월의 아픔도 사르르 녹아 내리고 한 많은 한세상 춤이라도 추는 듯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리여 내년이면 구십하고도 하나여 박선옥 영암문인협회 사무국장
영암군민신문744호2023.02.03 13:25인생사 두 갈래 갈림길 앞에 서 보니 세상에는 기다려야 할 문과 열어가야 할 문이 있구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두 해 보내고 보니 알아서 열리고 빗겨 가는데 어디가 내 길인지 이제는 묻지도 않네 인생사 두 갈래 갈림길 앞에 서 보니 세월이 말을 해주는구나! 온 맘 다해 붙잡았던 것들 지나고 보니 헛되고 헛되어 버거운 짐 내려놓으니 하늘이 열리며 가야 할 길이 보이네 노유심 영암문인협회 회원
영암군민신문743호2023.01.20 14:28별빛 마루 머리에 이고 밭에 나가 김을 매며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신 엄마 곡식으로 돈을 팔아 일곱 남매 종종걸음에 행여나 궂은소리 들릴까 맘 졸이셨지 고름하게 잘 사는 모습에 허허 웃으셨지만 허리는 낫자루로 구부러진 모정 오늘도 햇살 좋은 선산에서 노란 잔디 모자 예쁘게 쓰고 자식들이 하늘에 띄운 그리움 받으실 우리 엄마 강종림 월간 <문학바탕> 시부문 신인문학상 한국문학예술인협회...
영암군민신문742호2023.01.13 14:09꽃이 피고 지고 또 핀다. 해와 달이 뜨고 저물어 다시 뜬다. 큰 바람, 큰 비, 급한 물길에 익은 열매가 다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타버린 자리, 부서진 폐사지, 아픈 자리, 눈물 마른자리에 피는 꽃이 더 향기롭고 그 자리에 지는 꽃이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뒷 표지 같은 지상의 풍경을 급히 읽고 간다. 가을 밤, 책 한 권 벌써 떼었다. 박춘임 '문학춘추' 시로 등단(2...
영암군민신문741호2023.01.06 13:21겹쳐진 돌담길을 돌아 싸리문을 반쯤 열어놓은 외할머니댁 방안 한구석엔 촘촘히 엮어 놓은 갈대 그 안에 고구마가 가득 쌓여있고 방안의 풋풋한 흙내음은 외할머니의 포근한 정으로 흐르고 저녁노을 붉게 물들면 대나무를 흔들며 보금자리 만들던 참새도 단잠을 청하고 아궁이에 불 지피시며 알맞게 잘 구워진 군고구마 껍질 벗겨 한입 넣어 주시며 미소 지으시던 외할머니 굴뚝 위에 하얀 연기 하늘위로 날고 별들의 속삭임이 시작되면 할머니 품안에 꼭 안...
영암군민신문740호2022.12.30 12:03어디 틈만 생겨 보아라 도심 시멘트 바닥이라도 낙하산 탄 씨앗들 바람에 산들산들 질긴 생명의 싹눈을 틔우리니 족보 있는 풀의 귀족들 흙살 뜨락에서 알뜰살뜰 가꾸어지지만 내몰리기만 하는 설 곳 없는 우리 민초들 그러니 생명력이라도 질길 수밖에 억센 손아귀에 목울대를 잡혀 뽑히지 않으려 땅심 붙잡아 버팅기고 빈틈 보이는 곳 어디든 목숨줄의 닻을 내린다 비바람 벗 삼아 보잘 것 없어도 그러나 당당하게 생명꽃을 피우느니 세상...
영암군민신문739호2022.12.23 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