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에서 슬슬 기어 나온 지렁이들이 땅바닥을 헤맨다 흙모래 범벅 어디로 가려는지 느릿느릿 온 몸뚱이 움직여 보지만 좀체 나아가지 못한다 땅속 집에 빗물이 차면 숨쉬기 어려워 습도로 느끼는 걸까 비가 오리라 미리 알고 밖으로 기어 나온다는데 오늘도 비가 내리려나 날씨 쨍쨍한데 문득 자정 넘어 후두후둑 빗방울 소리 들린다 전석홍 전남도지사
영암군민신문717호2022.07.08 11:56불면을 부르고 신열을 끊게 만들고 여린 살갗을 틔웠다 중력의 법칙을 못 이긴 대나무가 우두둑, 경추 마디 어디쯤 부러지는 소리 발효된 시간이 전선을 통해 지잉, 제몸을 떨 때마다 사각 틀 속에 피었다 지는 핫 한 초상화 떨어진 운동화에 밑창을 깔면 긍극으로 향하던 일상, 각인이 되었다 이제 그만 어디쯤에 서서 묻어 두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 한 말들이 우두커니 흐느적거리는 변곡점에 절반도 못 산 생이 떫은 감처럼 우려 나오...
영암군민신문716호2022.07.01 11:28머나먼 푸른바다 망망대해 바라보는 외로운 여인아 파도가 전해준 소리에 고요히 귀기울이렴 깊고도 소박하게 울려 퍼지는 섬마을 합창 정겹고 아득한 물새들 행복한 노래소리 듣는다 고즈넉히 머금고 세월을 견뎌온 바위산 미소에 입맞춤하고 지평선 따라 넘쳐 흐르는 산마을 구름은 둥실 차올라 지형으로 누웠구나 햇살 사이 사이에 드리운 그림자 옥색 너울 어깨동무 벗삼아 넘쳐나는 실루엣을 품어 오른다 ...
영암군민신문715호2022.06.24 11:50네 안에 나는 없네 빈 접시, 오롯이 붉구나 너는 왜 아직 거기 서 있느냐 꽃 문 두드려 물어볼까 한참을 우러를 뿐 묻지 못했네 돌연 팽팽해진 허공, 침묵도 말이어서 삼키면 목이 아프다 봉성희 영암문인협회 회원 솔문학동인회장 역임
영암군민신문714호2022.06.17 14:14지구는 느린 시간과 빠른 시간을 하루에 다 지나친다 빠른 시간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소나기가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피고 지는 꽃들이 있다 느린 시간에는 그리운 것들과 한숨이 있고 너무 빠른 시간이 독촉하는 초조한 순간들이 있다 시간은 너무 뜨거워서 빨리 지치고 또한 너무 차가워서 늦게 달궈진다 강물은 금새 불어났다 다시 제 모습으로 잦아든다 바다는 천천히 빠져나가고 갑자기 밀려온다 밀려온 시간들은 발이 푹푹 빠지는 砂丘를 만든다 ...
영암군민신문713호2022.06.10 13:26빛바랜 낡은 사진첩 속에서 쪽진 머리 곱게 하신 모시적삼에 옥색치마 즐겨 입으시던 당신 모습 그려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보기만 해도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당신 생각에 잠겨봅니다 다 못 채우고 세상에 태어나 유난히 병치레 했던 나 색깔 고운 핑크빛 구두와 비로도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곱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빙그레 웃으시는 당신을 꿈속에서라도 한번만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리운 ...
영암군민신문712호2022.06.03 14:26황금색 태양 신선한 바람결을 마음껏 마시는 내 심장이 뛰면서 남은 삶을 비워내고 있다 사랑도 이별도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 돌아오지 않는 강 오늘 해야 할 일 한다고 그토록 열심히 사소한 것에도 애태우며 쉴 틈 없이 살아온 삶 내보일 것 없는 자화상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온 삶인데 희미한 낙이라도 오늘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없는 삶이 될 걸 의미없는 삶은 죽어있는 시간 흐르는 시냇물처럼 샘솟는 ...
영암군민신문711호2022.05.27 12:01비가 온다더니 천둥과 번개 번쩍이며 옷깃을 잡아당기듯이 바람이 막 불고 소낙비가 사정없이 내린다 하늘은 무엇에 그리도 화가 났을까 겁에 질려 대문이며 창호지 문 걸어 잠근 아부지 쌓이고 터진 도랑물에 씻겨진 터 따라 들녘의 아우성이 들리며 산발치는 장맛비에 휘어져 춤추는 수양버들 임 보내지 못한 애가인가 그림자 하나 서성거리지 않는 산과 들 거침없이 비가 내리는 날 빛을 잃어버린 아짐들 영혼까...
영암군민신문710호2022.05.20 13:42가시울타리 안에 자홍빛 의중 하나를 막 앉히고 있다 꽃등 하나 내걸고 꽃대 안의 사나운 것들 다 밖으로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세상의 색깔들 중 제 것만 골라 쓰는 것들은 꽃들밖에 없다 출정식 같다 두꺼운 갑옷을 두르고 비수를 품고 벼르고 서 있는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자홍빛은 절대 이 가시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불도 없이 끓이고 있는 것이 있다 이글거리는 꽃송이 분출하기 직전이다 그 꽃송이 다 꺼지고 나면 결국 하얗게 재를 날리는 꽃씨들 누...
영암군민신문709호2022.05.13 11:36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 같은 소음이 이른 아침시간 정적을 깬다 와르르 담장 넘어가는 소리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 포클레인 한 대가 야금야금 집 한 채를 파먹고 있다 새로 난 도로를 따라 돌연 드러난 낡은 집 한 채 소리 내지 않고 버티는 법을 알았는지 대숲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더니 이제 그만 긴 고독을 끝내는가보다 집 한 채를 삼킨 포클레인은 배가 부르긴 부른 걸까 저 적막함 어쩌면 편안함 트림 같은 쓸쓸함이 ...
영암군민신문708호2022.05.06 11:56